“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요한 20,2-8) <사도 요한 축일에> - 오늘 생명 말씀에 귀여는 것이 당신 덕분입니다. 누구나 눈 감아도 머리위에 태양이 떠 있다고 안다. 밤이 되어 달과 별이 솟아올라도 굳이 숨은 해를 찾아 헤매다 눈물 흘리지 않는다. 태양이 곧 되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밝게 빛나는 태양이 하늘에 떠 있을 때 고개 숙이고 눈물 흘려 가며 괴로워한다. 제 몸 태우는 태양의 크나 큰 사랑 에너지에 작은 검은 망막 다 타버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 검은 조각 한쪽이 무어 그리 대단하다고 빛보다 어둠을 더 사무쳐 했는지 떠나가는 자 모두 빈 몸이거늘 주먹만 하늘에 내 지르고, 허리 고추 세우고 머리 들어 감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당신은 곧 없어질 검은 망막 아끼기보다 큰 사랑을 향해 날개 짓하여 날기 바랐습니다. 언제나 방향을 잃지 않고 태양을 제대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제 몸 태우는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당신의 언어는 언제나 우리를 꿰뚫어 놓습니다. 거죽에서 속까지 갖은 껍데기 뒤집어쓰고 썩은 냄새 풍기는 쓰레기 몸뚱이를 헤집어 바람과 태양에 널어 말리는 빨래 꼬챙이입니다. 빨래 잘하는 아낙이 걸레 더럽다 탓하지 않고, 위아래 뒤집어 손으론 오물조물, 방망이론 타닥이 듯. 정신 사납게 만들어도 한번 두 번 맞을수록 개운해져 걸레 된 이 몸이 오히려 감사해 합니다. 멋모르는 자 아직도 꾸민 이야기라 여기나 살필수록 찾아지는 역사의 증거, 연못 통해서 샘솟는 생수의 강이 되어 흐르다 드디어 온 지구 적시니 푸르른 열매 가지가지 맺혀 누구든지 따먹게 됩니다. 스승 예수 묻힌 동굴에서 무엇을 보셨나요? 팔짱끼고 구경하지 않으시고 몸으로 보셨기에, 당신의 눈이 그 때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빛을 믿어서 얻었노라고 고백합니다. 신앙을 굳이 본다는 동사로 새겨 주신 이유는 친구 되어 협조하기 바라시는 주님의 바람을 잊지 말라고, 한 알의 밀알도 썩어야 열매 맺는다고, 세상의 목숨에 죽어야 영원히 산다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갈바리아 언덕 피 솟는 십자가 증언이 당신으로 인해 그 깊은 뜻을 잃지 않고 전해진 것은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모시라는 것이며, 여전히 태어나는 뭇 토마들을 어루만지기 위함입니다. 믿는다, 진리, 빛, 생명, 성령, 사랑, 들어 올림, 로고스, 때, 표징 등, 당신이 즐겨 부르는 노래의 단어는 비록 적으나 가슴 속에 깊이 엄청난 힘으로 폭발하여 듣는 이를 변하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 우리가 생명 말씀에 귀여는 것이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사랑받던 당신 이름 여전히 부르고파 우리 조상, 부모 형제, 아들에게 붙였으니 언제나 그 이름 안에 활동하시는 것 믿기 때문이며, 우리가 드릴 최상의 찬미가이겠기에 그리 합니다. 아멘.
요한복음이 역사적으로 부합된다는 고고학적 발굴이 많습니다. 유대 지방의 지리, 베짜타 연못, 실로암 횃불 행렬, 십자가 형에 처한 유골의 대퇴골이 꺽여 발견된 일, 등 모두 근년에 발견되어 요한 복음이 얼마나 역사에 충실한지 가르쳐 줍니다. 성서 사학자들은 요한 복음의 연보로 계산하여 예수님께서 기원후 30년 4월 7일 금요일에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영적 복음서로만 알았던 요한의 역사성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후반부를 제외하고 복음서 대부분을 사도 요한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작성되었다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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