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혹시 우리들도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서 ....

ohjulia 2007. 2. 12. 07:33
2007년 2월 12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제1독서
창세기 4,1-15.25
1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 아이를 얻었다.” 2 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5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6 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7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8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9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11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12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13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14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아들을 낳고는,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복음 마르코 8,11-13
그때에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한 소년이 할아버지와 함께 나귀를 끌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왜 바보같이 나귀를 타고 가지 않느냐고 비웃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나귀를 타고 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걸어가자 또 어떤 이가 어린 것을 걷게 하는 무정한 할아버지라는 비난을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손자를 나귀에 태웠습니다. 또 어느 정도 길을 가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손자를 가리키며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아이라고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나귀를 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말 못하는 짐승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정말 해도 너무하는 사람들이라는 비난을 퍼붓는 것이었어요.

그렇다면 이 할아버지와 손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이러한 경우를 우리들은 종종 체험을 하게 됩니다. 정말로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을 했지만, 그 의도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때에는 힘이 빠지지요. 그래서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다른 방향으로 바꾸면, 또 그렇게 바꾸었다고 이러 저래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욱 더 힘이 빠지곤 합니다.

어떤 사람이 치과에 가서 이 하나를 빼는 데 얼마냐고 물었답니다. 의사가 10만원이라고 대답하자 그 사람은 깜짝 놀라면서 말했지요.

“아니? 이 하나 뽑는데 1분도 안 걸리잖아요. 왜 그렇게 비싼 거죠?”

그러자 심각한 표정으로 의사가 말했답니다.

“물론 환자분이 원하시면 아주 천천히 천천히 뽑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 하나 빼는데 정말로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환자에 대해 일침을 놓는 의사의 말이 정말로 압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예수님께서도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침을 놓는 말씀을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의 인간 사랑의 그 깊은 뜻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외적으로 보이는 기적을 행하셨던 예수님이시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기적 자체만을 바라봅니다. ‘오늘은 어떤 신기한 일을 행할까?’ 하고 예수님을 보고만 있더라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예수님께 대한 부정적인 말도 합니다. 마귀를 쫓아내면 베엘제불의 도움으로 쫓아내는 것이라는 말을 하며, 또한 힘없고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부정한 사람과 어울리기 때문에 역시 부정한 사람이라고 판단을 해버립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표징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혹시 우리들도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직접 보여주시는 표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내게 주어질 은총을 스스로 걷어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행복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日常 속을 통과해 간다('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중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은 지름길도 없으며,
일상의 현실을 슬쩍 비켜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행복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을 통과해 간다.

게다가 우리는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대단한 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다만 이 순간-지금 그리고
여기에서-우리 주변의 작은 일들을
볼 수 있는 눈을 뜨면 되는 것이다.

새들이 앉아 있는 나무, 먼 바다,
폭풍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면 된다.
삼라만상이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느끼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것은 일종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