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잠시 쉬고 있는 교우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해 봅시다.

ohjulia 2007. 6. 15. 08:03
2007년 6월 15일 예수 성심 대축일

제1독서 에제키엘 34,11-16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13 그들을 민족들에게서 데려 내오고 여러 나라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산과 시냇가에서, 그리고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14 좋은 풀밭에서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은 그곳 좋은 목장에서 누워 쉬고, 이스라엘 산악 지방의 기름진 풀밭에서 뜯어 먹을 것이다.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제2독서 로마서 5,5ㄴ-11

형제 여러분, 5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복음 루카 15,3-7
그때에 3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요즘 저는 가정방문 중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방문이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더군요. 이번 주에는 지난 화요일부터 3일 연속으로 가정방문을 했는데, 특히 어제 같은 경우는 12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방문을 했는데도 겨우 1개 구역을 마쳤을 뿐입니다. 하긴 집에 계시지 않으면 집 밖에서 기도를 한 뒤에 다른 집을 방문했고, 만약 냉담자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든 고해성사를 보게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가정방문을 할 때, 어떠한 가정을 중심으로 방문해야 할까요? 당연히 열심하지 않은 가정, 지금 쉬고 있는 가정을 중심으로 방문하여 다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방문을 하다 보면, 열심한 가정을 중심으로 방문하고 싶은 인간적인 마음이 자주 일어납니다.

때로는 문밖에서 마치 싸구려 책 외판원 취급당하듯이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거부를 당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답답한 마음이 계속 생기깁니다. 왜냐하면 성당에 못나가는 이유가 외적인 것에 있다고 하시거든요. 즉, 자기 때문에 성당 못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외적 이유 때문에 성당에 못나간다는 핑계만 계속해서 반복하시기에 그 이야기가 그리 좋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냉담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냉담을 푸는 순간, 그 순간은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돌아오는 주일날 나오셔서 제게 “신부님, 저 왔습니다.”하면서 환하게 웃으실 때의 모습은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약간의 수고로 이들이 성당에 다시 나왔다는 사실, 물론 얼마 뒤 다시 냉담하시는 분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정말로 열심한 신앙인으로 바뀐 분들을 만나게 되면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저는 사실 오늘 복음 말씀을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광야에 놓아 두냐는 것이지요. 한 마리를 찾는 동안 광야에 내 팽개쳐진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잘못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가정 방문을 통해서 그 예수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한 분이라도 다시 신앙생활로 이끌었을 때, 그 기쁨이 훨씬 더 크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다른 양들을 그냥 광야에 팽개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가 똘똘 뭉쳐있기 때문에,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똘똘 뭉쳐져 있지요. 중요한 것은 그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분들을 찾아뵙고 그들을 다시 아흔아홉 마리의 양 무리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너무나도 많은 냉담자들. 이제는 그들을 하나씩 주님 앞으로 모시고 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때 우리 역시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잠시 쉬고 있는 교우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이황의 버선('행복한 동행' 중에서)

세상일은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마음먹느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

퇴계 이황이 첫째 부인을 잃고 혼자 살 때의 일이다. 평소 존경하던 선비 권질이 퇴계 이황을 불러 술 한잔을 권하며 한참을 주저하다 말했다.

"정신이 맑지 못하고, 영리하지 못한 나의 딸과 혼인해 줄 수 있겠는가? 부족한 내 딸을 믿고 맡길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밖에 없네."

한참을 생각하던 이황은 정중하게 말했다.

"저는 오히려 꾸미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기꺼이 혼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황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자란 권씨 부인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정작 이황 자신은 부인을 한결같이 공경하고 격려했다.

조정에 나가 왕을 알현하는 어느 날, 권씨 부인이 이황에게 버선을 내밀었다. 권씨 부인이 난생처음 만든 그 버선은 빗자루를 본으로 삼아 그 생김새가 아주 이상했다. 하지만 직접 버선을 지어 준 부인의 정성을 알기에 이황은 그 버선을 신고 임금 앞에 나섰고, 그것을 본 중종과 함께 웃었다. 중종이 아내를 공경하는 퇴계의 인품을 높이 샀음은 물론이다.

권씨 부인은 지금도 후손들에게 '바보할매'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그러나 이황은 그 부인과 16년을 함께 살면서 수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천국을 만드는 것은 결국 긍정적인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