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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코린토 2서 11장 18-30절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참혹한 오늘을 견뎌낼 수 있는 이유>
요즘 매 미사 때 마다 계속해서 존경하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이 봉독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생애를 묵상할 때 마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그분의 생애는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 모릅니다. 그의 삶은 반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반전이 많았던 만큼 고통이나 슬픔이 컸었고, 시련과 굴곡이 계속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서는 마치 사육되어지지 않고 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냄새가 풍깁니다.
그는 일생동안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외로운 방황을 거듭합니다.
그는 불의와 그릇된 권위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야성(野性)을 지녔습니다.
그의 나날은 외로운 예언자처럼 늘 허기와 갈증으로 가득 찼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글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그분의 글은 솔직합니다.
그분의 글을 대할 때면 마음이 저려옵니다. 고통의 끝까지 가본 사람에게서만이
나올 수 있는 ‘진짜 글’임을 실감합니다.
절실한 하느님 체험, 참 깨달음을 이룬 사람에게서 나온 ‘제대로 된 글’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인 코린토2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제자가 됨으로 인해 자신이
겪게 되었던 숱한 어려움들을 짤막하고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위 글을 읽는 동안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바오로 사도의 지난(至難)하고 신산(辛酸)했던 생애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오지 않습니까?
바오로 사도의 위 표현은 무엇을 암시합니까?
자신이 이토록 고생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뜻에서 말했겠습니까?
스스로를 향한 공치사이겠습니까?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그 모진 시련과 숱한 난관 앞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행복했다고 고백하는 데,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시련의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견딜 수 없는 시련이라 할지라도 시련의 이유를 알게 되면
기꺼이 이겨낼 수 있는 법입니다.
절대 절명의 순간 앞에서 삶에 대한 의미 추구를 포기한 사람은 쉽게 죽음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골짜기 한 가운데를 지나가면서도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 사람은 그 어떤 참혹한 현실도 기꺼이 견뎌낼 수 있습니다.
삶에서 별 기대할 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남아있는 것은 비참한 죽음뿐입니다.
참 진리를 찾은 사람들, 참 가치관을 알게 된 사람들, 참 스승을 만난 사람들에게 고난은
오히려 축복으로 변화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정녕 큰 은총을 체험합니다.
참 진리이자 참 가치관, 참 스승이신 예수님을 확실하게 체험하는 축복을 체험합니다.
그 은혜로운 체험이후 바오로 사도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 유일한 존재의 이유가 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더 이상 매질도, 채찍도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감옥생활도, 죽음의 위협도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굶주림과 목마름도 그를 괴롭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과의 충만한 합일로 인한 극도의 행복을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게 되었으며,
그 어떤 환경도 방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신앙여정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고통도 주시고 좌절도 주시는 하느님, 결국 그런 시련이나 작은 죽음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재창조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매일의 고통 그 한 가운데 반드시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고, 언젠가 은총의 밀물이
밀려오면 우리는 그 오랜 허물을 벗고 큰 바다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비록 오늘 우리의 나날이 부족하고 한심하다 할지라도 언젠가 우리 삶에도 반드시
축복의 밀물이 밀려올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 역시 바오로 사도처럼 주님의 인도아래 더 큰 가치관이자 더 큰 행복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희망만 잃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 참혹한 오늘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님
예수 내 기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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