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양 승국 신부님의..

다양한 하느님 사랑의 얼굴

ohjulia 2007. 10. 5. 13:06


 
    10월 5일 연중 제26주간 금요일-루카 10장 13-16절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다양한 하느님 사랑의 얼굴> 부모자식간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이나마 하느님의 사랑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자식들을 향한 부모님들의 사랑, 생각해보십시오. 눈물겹습니다. 무모합니다. 일방적입니다. 상처와 배반에도 불구하고 계속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강도나 크기는 하느님 사랑과 비교하면 백만분의 일, 천만분의 일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우리 각자를 향한 하느님 사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것입니다. 이토록 충만하고 풍요로운 하느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의 과제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알게 될 때 우리의 삶은 훨씬 편안해질 것입니다. 한결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그 때부터 우리 신앙은 한 차원 성숙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개의 얼굴, 만 가지 방법으로 하느님 사랑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때로 격려와 지지, 우정과 자비의 얼굴로, 때로 분노와 원망, 질책과 매의 형태로, 때로 재앙과 혼동, 분노와 죽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결국 그 모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위로보다는 질책이 필요할 때가 있지요. 그런 순간, 하느님의 질책은 무섭도록 신랄합니다. 그러나 꾸짖으시는 하느님은 ‘고생 좀 해봐라!' 하시며 책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 흘리시며 분노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에.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시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코라진과 베싸이다, 카파르나움에게 던지시는 예수님의 독설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번민과 고통과 십자가가 우리 삶에 밀려올 때 마다 놀라지도 마십시오. 낙담하지도 마십시오. 설레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하십시오. 단 한 가지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행복을 간절히 원하십니다. 세상 그 어떤 아버지라도 자기 자녀들의 고통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 일부러 자녀들에게 고통을 받게 합니다. 자녀들에게 아픔을 겪게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자녀의 일탈, 자녀의 그릇된 악습, 자녀의 부족함을 일깨우기 위해서, 한 단계 성장시키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가끔씩 우리 인생 역사 안에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십자가를 보내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고통과 십자가 앞에서 도망 다닙니다. 기를 쓰고 회피합니다. 고개를 흔듭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그 어떤 고통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하느님께서 보내주시는 은총임을 압니다. 지금 비록 고통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분명히 사랑의 표현임을 확신합니다. 고통 앞에서 큰 위안이 되는 진리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의 아버지들도 고통 중에 있는 자녀나 번민하는 자녀를 더욱 아끼며 섬세하게 보살펴줍니다. 세상의 아버지들도 그러한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어떠하겠습니까? 더 큰 사랑으로, 더 큰 위로와 더불어 울고 있는 우리,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귀여워하시는 이들을 고생길로 이끄시고 많이 아끼실수록 많은 고생을 내리십니다(성녀 아빌라의 데레사).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 그의 영광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님 Jesus, Joy of Man's desi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