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음악감상을 통해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세요.

ohjulia 2008. 5. 19. 06:26
2008년 5월 19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제1독서 야고보 3,13-18

사랑하는 여러분, 13 여러분 가운데 누가 지혜롭고 총명합니까? 그러한 사람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살아, 자기의 실천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14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거든,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15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16 시기와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행도 있습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집니다.



복음 마르코 9,14-29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14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평생을 사셨던 할아버지께서 도시에 살고 있는 큰 아들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처음으로 방문하신 아버지를 위해 아들은 최선을 다해서 맞이했지요. 이제 밤이 되어 할아버지는 잠자리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납니다. 아주 기괴한 소리, 정말로 듣기 싫은 소리가 나서 할아버지는 그 소리를 찾아서 나섰지요. 그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손자의 바이올린 켜는 소리였습니다. 이제 막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기에 그 소리가 결코 아름답지 못했지요. 할아버지는 이렇게 형편없는 소리를 내는 악기를 연습하는 손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할아버지께서는 둘째 아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둘째 아들 역시 처음으로 방문하신 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맞이했지요. 그리고 밤이 되어 할아버지는 잠자리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큰 아들의 집에서 들었던 소리와는 달리 너무나도 아름답고 듣기 좋은 소리였습니다. 시골에서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아름다운 소리였지요. 그 소리를 찾아 나선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리의 진원지는 손녀의 바이올린 켜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똑같은 바이올린인데 이렇게 다른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요.

똑같은 바이올린입니다. 그러나 누가 연주를 하느냐에 따라서 소리가 달라지더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진리를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주님께 대한 우리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위의 진리를 잊어버리고 자주 주님을 원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에게 많은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은총과 사랑을 바라보려고 하기보다는 내게 아무런 것도 주시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에게만 사랑을 베푸신다는 말도 안 되는 불평과 불만을 주님께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은총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우리들 자체가 문제인 것이지, 결코 똑같은 은총과 사랑을 주시는 주님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우리들이기에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쁜 영이 들어간 아이의 아버지처럼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라는 가정의 말을, 그리고 조건의 말만을 계속해서 할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간직하기를 우리들에게 요구하십니다. 그래야 주님께서는 주시는 그 큰 은총과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믿음은 과연 어떠할까요? 나는 과연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충만히 받을 수 있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렇지 못한 우리들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음악감상을 통해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세요.



더 높이 더 많이(쑤춘운리, ‘여유’ 중에서)

한 지혜로운 심리학자가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 그는 한 가지 비결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바로 ‘더 높이 더 많이 손을 드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에게 수업 시간뿐 아니라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도 손을 번쩍 들라고 일러 주었다. 딸은 아버지가 일러 준 대로 실천했다. 화장실이 급할 때는 물론 선생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정확한 답을 모르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한두 달 시간이 흐르자 선생님은 손들기 좋아하는 어린 여학생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질문을 할 때든 질문을 받을 때든 자신도 모르게 그 아이를 먼저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결국 아이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좋은 성적을 받았고 학교생활에도 즐겁게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더 높이 더 많이 손을 드는 것, 이것은 심리학자가 딸의 인생과 성공을 위해 숨겨 둔 비밀 병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자는 늘 소극적인 행동으로 일관한다. 지혜로운 아버지가 딸에게 가르쳐 준 것은 바로 성공하는 사람이 반드시 지녀야 할 ‘적극적 사고방식’이었다. 우리는 체면 때문에 또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까 두려워서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할 때가 있다. 안타까운 것은 내면의 적극적 열정이 감소되는 만큼 소극적 감정이 배가 된다는 사실이다. 성공의 길은 머릿속의 잡념을 버린 채 자신을 더 많이 표현하고 드러내는 사람에게 활짝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