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불의로 인해 고통 당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럽다

ohjulia 2009. 3. 13. 10:14

2009년 3월 14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창세기 37,3-4.12-13ㄷ.17ㄹ-28

3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4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12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17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20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25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27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28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복음 마태오 21,33-43.45-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옛날, 어느 시장에 두 짚신 가게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게는 장사가 아주 잘 되는 반면에 다른 가게는 매일 파리만 날리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도 다음번에 올 때에는 맞은편 가게로 들어가니, 한가한 가게 주인의 속은 점점 타들어 갔지요.

‘이상하다. 모두 한 곳에서 똑같은 짚을 떼어 오는데, 왜 사람들이 저 집 짚신만 찾지? 더구나 저 집 주인과 나는 어려서부터 한 마을에 살아 짚신 꼬는 방법도 똑같지 않은가?’

장사가 안 되는 가게 주인은 사람을 시켜서 수시로 건너편 가게 짚신을 사와서 자기가 만든 것과 비교 분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똑같은 재질에 모양까지 같으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나 억울한 것입니다.

이러한 속상한 마음을 안고서 이 사람은 어느 날 술 한 잔 걸친 뒤 맞은 편 가게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지요.

“이보게, 내 하나만 묻지. 도대체 자네가 만든 짚신과 내가 만든 짚신의 차이는 뭔가? 나는 암만 봐도 내 짚신의 하자가 뭔지 모르겠네.”

그러자 가게 주인은 웃으며 짚신 하나를 건넸습니다.

“한번 신어 보지. 하지만 자네가 신고 있는 버선을 벗어야 하네.”

왜 버선을 벗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 채 짚신을 신는 순간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답니다. 맨 발이 짚신 바닥에 닿았을 때, 그 안이 너무나도 부드럽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나는 짚신 안쪽에 돋아 있는 보푸라기 하나하나를 모두 손본다네. 발뒤축이 닿는 안쪽 면은 몇 배나 공을 들이지. 까칠한 부분이 없으니 손님들 발이 편하지 않겠나. 그게 내 짚신의 인기 비결이라네.”

차이는 커다란데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작은 부분 하나까지 살피는 세심함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가 커다란 차이를 만들었던 것이지요. 우리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요?

사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와 그들에 대한 세심한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당연히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습니다. 문제는 내 자신은 전혀 그렇게 생활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받는 존경과 사랑에 대해선 배 아파 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는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는 못된 소작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정말로 못되었습니다. 밭 임자가 모든 것을 다 해준 뒤에 포도밭을 소작인들에게 맡기지요. 따라서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해야 할 텐데, 그들은 마치 그 포도밭이 자기 것인 양 소출 받으러 온 사람들을 죽이고 심지어 주인의 아들마저 죽여 버리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합니다. 바로 포도밭을 차지하려는 욕심과 자신들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는 이기심과 욕심을 동반하는 물리적인 힘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세심한 사랑의 힘을 통해서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비슷한 삶처럼 보이면서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불의로 인해 고통 당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럽다(플라톤).



우렁이의 사랑법(박성철,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중에서)

우렁이는 알이 깨어나면 자신의 살을 먹여 새끼를 기릅니다.

새끼는 어미 우렁이의 살을 파먹고 자라나고 혼자 움직일 수 있을 때쯤이면 어미 우렁이는 살이 모두 없어져 껍질만 남아 물 위에 둥둥 뜨게 됩니다.

그렇게 떠오른 껍질만 남은 우렁이는 흐르는 물살에 아무 말없이 떠내려갑니다.

늘 주기만 했던 자신의 사랑을 한 번도 탓하지 아니한 채…

사랑은 어쩌면 받아서 내가 살찌는 그런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당신의 삶에 영양분이 되어 주는, 그렇게 끊임없이 주고 있음에도 늘 더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눈물겨움.

그런 사랑이야말로 진실로 아름다운 사랑 아니겠습니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야 한두 가지가 아닐 테지만 그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

끊임없이 주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깡그리 잊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가진 사랑의 최상의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