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2010.05.17)

ohjulia 2010. 5. 17. 09:35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0.05.17)

2010년 5월 17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19,1-8

1 아폴로가 코린토에 있는 동안, 바오로는 여러 내륙 지방을 거쳐 에페소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제자 몇 사람을 만나, 2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그들이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바오로가 다시 “그러면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하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요한의 세례입니다.”
4 바오로가 말하였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님을 믿으라고 백성에게 일렀습니다.”
5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6 그리고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7 그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8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에 드나들며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담대히 설교하였다.


복음 요한 16,29-33

그때에 29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30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한 어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파도가 세차게 일어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어느덧 캄캄한 밤이 되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마저 잃어버리고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어디로 뱃머리를 돌려야 할지 전혀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얼마동안 있으면 배가 파선되어 삼부자가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이 이 같은 위대한 지경에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멀리서 작은 불빛 하나가 보이더니 점점 커져서 불기둥이 되어서 솟아올랐습니다. 그들은 그 불기둥을 보고 그 쪽이 육지라고 판단을 하고, 사력을 다해 노를 저어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부인이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 불이 나서 다 타버렸어요.”

그 순간 아버지와 두 아들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 집에 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육지를 찾지 못해 지금쯤 바다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고난은 이렇게 때때로 우리에게 예상치 못했던 복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고난과 시련이 다가오면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생각하고 이를 무조건 피하려고만 합니다. 결국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는 복을 스스로 피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이 모습을 우리에게 당신의 삶을 통해서 직접 보여주셨지요. 즉,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 뒤에 부활과 승천의 영광이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고통과 죽음의 십자가를 제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 점을 분명히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이 세상을 이긴 주님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우리 역시 세상의 고통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이 세상을 이긴 주님의 힘을 기억하면서 다시금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제 뉴스를 보다가 미국에서 94세의 할머니께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94세.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그러나 이 할머니께서는 나이에 구속받지 않고 공부를 했고 졸업까지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미술관 안내인으로 일하고 싶다는 포부까지 밝혔습니다.

아직 94세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의 눈으로써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인생의 빠른 속도가 아니라 권태다. 보람이 없다는 생각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헤럴드 도즈).



귀머거리 두꺼비(‘행복한 동행’ 중에서)

두꺼비들 사이에서 높은 탑의 정상에 오르는 대회가 열렸다. 응원하는 관중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시합은 시작됐고 여기저기서 무성한 말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두꺼비가 어떻게 저 높은 탑까지 오를 수 있단 말이야!”

구경꾼의 말에 몇몇 두꺼비는 바로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그때, 구경하고 있던 또 다른 두꺼비가 외쳤다.

“저런 걸 보고 고생을 사서 한다고 말하는 거야. 그 누구도 탑 꼭대기까지 오를 수 없다고!”

그 말을 들은 대부분의 두꺼비 선수들은 탑에 오르기를 포기했다. 그런데 어떤 말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탑을 향해 걸어가는 한 마리의 두꺼비가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꼭대기에 이른 그 두꺼비만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지켜보던 두꺼비들은 승리한 두꺼비에게 다가가 끝까지 의지를 불태울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물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알고 보니 그 두꺼비는 귀머거리였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산다. 심지어 나의 꿈과 목표까지도 남의 말에 의해 좌지우지될 때가 많다. 만약 누군가 나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면, 차라리 스스로 귀머거리가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