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사도행전 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33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복음 요한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당신은 그림에 재능이 없고 창의성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회사를 나가 주세요.”라는 말을 상사에게 들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렇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끊임없이 노력했지요. 이 사람이 바로 꿈의 동산인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트 디즈니입니다. 또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넌 음악에 별 재능이 없는 것 같아. 포기하든지, 죽자 살자 연습을 하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겠어.”라는 말을 음악 선생님께 들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죽자 살자 음악을 연습했지요. 그는 훗날 세계 최고의 음악가가 된 베토벤입니다.
“너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구나. 다른 애들에게 방해만 되니 교실에서 나가는 것이 좋겠다.”라는 말을 선생님께 들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혼자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했지요. 이 사람이 바로 192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계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입니다.
사람이란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즉,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아무것도 될 수 없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존재로 살라고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즉,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힘이 되시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는 믿음을 통해서만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음을 그래서 힘차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을 분명하게 전해주십니다. 결국 믿음이 정답인 것입니다.
2개의 원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2개의 원석은 서로 다르게 변했지요. 하나는 광채 없이 흐릿하게, 또 하나는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흐릿한 돌은 겨우 8번 깎였고, 빛나는 돌은 800번 이상 깎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빛나는 차이를 보였던 것이지요. 우리 인생도 더욱 더 빛나기를 바란다면 이렇게 무수히 깎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이기에 이렇게 깎여 나갈 때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 보다 더 고통과 시련을 이겨나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스스로 빛나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는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면서, 고통과 시련에 좌절하기 보다는 딛고 일어서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소중한 주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삶의 의미보다 삶 그 자체를 더 사랑해야 한다(도스토옙스키).
성소에 대해 제 친구의 음반입니다.
김상균 라우렌시오. 제 친구입니다. 신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 한때 신부를 꿈꿨지만, 이제는 신랑이 된 친구. 그러나 지금 역시도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아이들을 가리키는 교수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고 또 이렇게 음반도 내는 친구입니다.
이 친구의 노래를 들으면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다양한 모습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성소를 생각하게 되지요. 결국 하느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데, 자신의 영광만을 드러내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됩니다.
지금 내 자신은 주님께 받은 그 거룩한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었을까요? 하느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내고 있는지, 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는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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