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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코스-연꽃 연못

ohjulia 2005. 9. 24. 11:34

데이트 코스-연꽃, 연못

진흙탕에 뿌리를 내린다. 뙤약볕을 달갑게 받는다. 더러운 물 위로 곧은 대를 뻗는다. 그리고 가장 깨끗한 한 송이 꽃을 피운다. 그래서 연꽃을 군자(君子)라고 한다.


한 송이 연꽃으로 핀 신라 천 년의 꿈
경주 서출지


등과 목덜미에 닿는 8월의 햇볕이 수천 개의 바늘인 양 따갑다. 시원한 그늘 아래 땀을 식히며 연꽃 한 송이 바라본다면 이 여름이 그나마 짧게라도 느껴질까.

경주 남산동 서출지. 남산 자락 아래 고요히 자리한 예쁜 연못. 지금 연꽃이 한창이다. 꽃잎이 부채만 한 초록색 연잎 사이로 탐스럽게 피었다. 해 뜰 무렵 넓은 꽃잎을 열었다가 해 질 무렵 다시 봉오리를 여미는데, 그 모습이 어여뻐 먼 걸음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사진작가들이 부지기수다. 이른 아침 서출지를 찾은 사람들은 “예쁘다 예뻐”를 연발하며 연못가를 거닌다.

서출지를 한층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연못 한쪽에 운치 있게 자리한 이요당이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 서출지 연못가에 석축을 쌓고 지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로 풍기는 분위기가 아늑하다.

연못 둘레를 따라 심긴 수백 년 묵은 배롱나무도 서출지의 운치를 더한다. 자줏빛 꽃잎을 가득 피워 물었다. 사람들은 연꽃의 단아한 자태에 감탄하며, 백일홍 붉은 꽃에 눈을 빼앗기며 서출지를 이리저리 거닌다.

밤이 되면 서출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경주 들녘 곳곳에 자리한 석탑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울 때쯤 서출지에는 환한 불이 들어온다. 이때면 동네 어른 아이들이 하나 둘씩 연못가로 모여든다. 주위에 자리를 펴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낸다.

사람들이 다 돌아간 늦은 밤에야 연못은 다시 고요해진다. 이요당 지붕 위로 둥근 달이 뜨고 연꽃은 꽃봉오리를 닫는다. 신라 천 년의 긴긴 꿈을 꾼다.

▒ 찾아가는 길
경주시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울산 쪽으로 가다가 사천왕사 터 앞에서 우회전, 화랑교를 넘어 동방역을 지난 후 우회전하면 통일전이다. 서출지는 통일전 왼편에 있다.



국경을 초월한 순결한 사랑이 활짝 피다
부여 궁남지


버드나무가 연못을 병풍처럼 둘러섰다. 연못 가운데 떠 있는 포룡정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돛배의 자태가 단아하다. 부여 동남리에 자리한 궁남지의 모습이다.

궁남지는이름 그대로 ‘궁(宮)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다. 즉 백제 별궁에 딸린 연못이었다. 지금은 5,000여 평의 연못 주위로 연꽃이 밭을 이뤘다. 그 규모가 약 9,000평에 달한다. 여름이 되면 만개한 연꽃과 연못 그리고 아름다운 정자를 보기 위해 궁남지를 찾는 이들이 제법 많다.

연꽃 사이로 난 여러 갈래의 흙길을 따라 궁남지 일대를 둘러본다. 맑고 깨끗한 백련과 수줍은 듯 연한 붉은색을 띠는 홍련이 주변을 화사하게 만든다. 볕이 강해 거닐기가 힘들다면 오두막에 앉아 쉬면 된다. 소나기라도 만나면 행운이다. 비를 맞는 백련이 장관을 이루니까 말이다.

궁남지는 ‘서동요’로 유명한 백제의 서동과 관계가 깊다. 서동의 모친이 궁남지 옆에서 살던 중 이곳에서 용을 만나 정신을 잃게 된다. 그후 낳은 아이가 서동이다. 서동은 당시 적국(敵國)이었던 신라의 선화공주를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유명한 ‘서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는다. 무왕이 된 서동은 훗날 20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이곳에 인공 연못을 만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서동은 아내와 함께 궁남지에 배를 띄우고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나눴다. 연은 더러운 곳에서도 때묻지 않은 꽃을 피운다. 그래서 꽃말도 ‘순결’이다. 국경을 초월한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은 분명 연꽃처럼 순결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깃들어서인지 궁남지와 주변의 연꽃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 찾아가는 길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탄천 IC에서 빠져 40번 국도를 타고 부여로 향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서천 IC로 빠져나와 4번 국도를 타고 부여로 향한다. 부여에 도착하면 궁남지 이정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줍은 듯 낯 붉히는 수련의 고운 자태
태안 법산지


법산리 마을길은 굽잇길이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콘크리트 포장길을 달린다. 민가가 한두 채씩 모습을 드러낸다. 버스 정류장 두 개를 지나치자 멀리 저수지가 눈에 띈다. 언뜻 보아도 규모가 꽤 크다.

가장자리에는 짙은 녹색을 띤 연잎이 쏠려 있고 그 위에 다시 분홍빛이 점점이 박혀 있다. 방죽에 올랐다. 아까 보았던 분홍빛은 작고 탐스러운 수련이었다. 백련이나 홍련처럼 키가 크지도, 꽃잎이 넓지도 않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연잎 위로 꽃을 피운 모습이 귀엽고 앙증맞다.

법산지 수련은 6월 말부터 개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추석 때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특히 수련은 백련이나 홍련보다 온도차에 민감해 아침에 꽃을 활짝 피웠다가 오후가 되면 다시 잔뜩 웅크린다. 아침 8시부터 낮 12시 사이가 법산지 수련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연못 전체를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역시 방죽이다. 방죽을 오가는 데 족히 한 시간은 걸린다. 법산지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한적하게 연꽃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산 IC에서 빠져 32번 국도를 타고 만리포해수욕장 이정표를 따라간다. 소원면 근처에 오면 왼쪽에 '법산 1리' 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마을로 들어가 두 번째 버스 정류장까지 가면 왼쪽으로 저수지가 보인다.



깜깜한 속세를 밝히는 저 백련처럼
무안 회산 백련지


60년 전, 초로의 노인이 연뿌리 열두 그루를 저수지에 심는다. 그날 밤 노인은 열두 마리의 학이 저수지에 내려와 앉는 꿈을 꾼다. 물 위에서 노니는 학의 모습이 마치 활짝 핀 연꽃과 같았다. 범상치 않은 꿈이라 여긴 노인은 그날 이후 정성을 다해 연을 가꾼다. 그것이 무안 회산 백련지의 시작이었다.

열두 그루의 연꽃은 시간을 타고 퍼져나가 지금은 10만 평이나 되는 저수지를 가득 메웠다. 둘레가 3km나 되는 동양 최대 규모의 연지(蓮池)다.

모든 것을 태울 듯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도 백련의 청초함과 고귀함을 빼앗을 수 없었던 것일까. 백련은 탐스러운 송이와 싱싱한 쪽빛 이파리를 가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대와 이파리가 살짝살짝 흔들리는데 그 모습에 마음이 두근거린다. 8월 중순이 되면 이곳은 새하얀 ‘백련밭’이 된다.

백련지 북쪽의 나무 데크는 연지를 동서로 나눈다. 데크를 따라 걸으며 깨끗한 백련과 짙푸른 연잎을 코앞에서 바라본다. 키가 크고 잎이 넓다. 가시연, 외개연, 홍련, 수련 등도 곳곳에 숨어 있다. 백련지 남쪽의 탐방로를 따라 걸어도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다. 서쪽에는 선착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배를 타고 연못 가장자리를 둘러볼 수도 있다(4인 기준 1만원).

해가 지면 백련지가 변신한다. 올해 개장한 500평 규모의 수상 유리 온실에 조명이 들어온다. 그 불빛은 연꽃과 연잎에 반사돼 백련지를 신비롭게 밝힌다. 진흙탕에 뿌리를 내린 백련이 연못을 밝힌다. 백련지는 깜깜한 속세를 은은하게 밝힌다.

▒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산 IC에서 빠져 32번 국도를 타고 만리포해수욕장 이정표를 따라간다. 소원면 근처에 오면 왼쪽에 '법산 1리' 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마을로 들어가 두 번째 버스 정류장까지 가면 왼쪽으로 저수지가 보인다.

발췌 애니카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