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올 한 해 어떻게 살았는지 자기 자신의 점수를 스스로 매겨봅시다.

ohjulia 2005. 11. 26. 17:01
2005년 11월 26일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제1독서 다니엘 7,15-27
15 나 다니엘은 마음이 어수선했다. 그 이상한 광경이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다. 16 그래서 거기 서 있는 한 분에게 가서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17 “이 큰 짐승 네 마리는 세상 나라의 네 임금을 가리키는데 18 마침내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물려받아 길이 그 나라를 차지하고 영원토록 이어 나가리라는 뜻이다.”
19 나는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무서운 모양을 하고 쇠 이빨과 놋쇠 발톱으로 바수어 먹으며 남은 것은 모조리 발로 짓밟는 넷째 짐승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20 머리에는 뿔이 열 개나 돋아 있었고 새로 뿔 하나가 나오자 뿔 셋이 떨어져 나갔는데 그 뿔은 눈도 있고 입도 있어서 건방진 소리를 하고 있었다. 또 그 뿔이 다른 뿔보다 커졌는데, 그것들이 모두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21 내가 보니, 그 뿔은 거룩한 백성을 쳐서 정복하였다.
22 그러나 태곳적부터 계시는 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오셔서 재판을 하시고 당신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의 권리를 찾아 주셨다. 거룩한 백성이 나라를 되찾을 때가 되었던 것이다.
23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넷째 짐승은 네 번째로 일어날 세상 나라인데 그 어느 나라와도 달라, 온 천하를 집어삼키고 짓밟으며 부술 것이다. 24 뿔 열 개는 그 나라에 일어날 열 임금을 말한다. 이들 임금 다음에 다른 임금 하나가 일어날 터인데, 그 임금은 먼저 일어난 임금들과는 달라 그중 세 임금을 눌러 버릴 것이다. 25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게 욕을 퍼부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을 못살게 굴 것이다. 축제일과 법마저 바꿀 셈으로, 한 해하고 두 해에다 반 년 동안이나 그들을 한 손에 넣고 휘두를 것이다.
26 그러나 마침내 재판을 받아, 주권을 빼앗기고 송두리째 멸망하여 버릴 것이며, 27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영광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에게 모두 돌아올 것이다. 그 나라는 영원히 끝나지 않아 모든 나라가 그 나라를 섬기고, 그 명을 따를 것이다.”


복음 루가 21,34-36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4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날이 갑자기 닥쳐올지도 모른다. 조심하여라. 35 그날이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덫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36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닥쳐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정말로 잘 어울리는 다른 이들이 보아도 너무도 환상적인 연인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절대로 싸울 일이 없다고 아주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묻지요, 인간사 안에 싸울 일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그러자 이 연인은 말합니다.

“철수씨는 오징어 다리를 좋아하고, 저는 오징어 몸통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긴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면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다가 싸움이 날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싸울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서로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일까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 각자를 모두 다르게 창조하신 것이 아닐까요? 물론 쌍둥이의 경우 외모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성격이나 속마음까지 같을 수는 없겠지요.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어떻게든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즉, 서로 싸우지 말라고, 서로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사이좋게 지내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다투는 이유를 들어보면, “너는 왜 나와 다르냐?”라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마음과 다르게, 내 생각과 다르게, 내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들로 우리들은 상대방과 때로는 결별을 선언하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서로 다르다고 싸움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내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서, 감사함을 느끼고 기쁘게 생활할 수 있기도 하고, 또 반대로 각종 불평불만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해야 할까요? 바로 나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힘주어 말씀하시고 계시지요.

“늘 깨어 기도하여라.”

깨어 기도한다는 것은 순간순간 잘못된 길로 가려하는 내 자신을 못 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을 사랑하시기에 주님께서는 교회력으로 마지막 날이라는 연중 제34주간 토요일에 이러한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한 해의 마지막에 선 지금, 다시금 올바른 길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하여 봅니다. 나와 다르다고 하면서 외면하는 내가 아니라,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내가 아니라, 각종 불평불만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내가 아니라……. 이제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랑의 내가, 늘 감사하면 사는 주님의 자녀인 내가, 그래서 행복한 내가 될 수 있도록 오늘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합니다.


올 한 해 어떻게 살았는지 자기 자신의 점수를 스스로 매겨봅시다.



조용한 물이 깊은 것처럼('좋은 글' 중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말들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말 중에 대부분은 남의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것도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아픈곳을 말하면서
그 말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이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자기를 드러내려 합니다.

그러나 어떤이는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할뿐입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말을 하지않고 생각을 합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여러 이야기를 생각없이 합니다.

자신이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해서는 않될것입니다.
확실한 이야기도 아닌
추측을 가지고 말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랑의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삶의 힘을 돋구어 주는 그런 말을 나눈다면
얼마나 우리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할까.

사람들은 드러내는 말 보다는
밝은 미소로,침묵으로
조용한 물이 깊은 것 처럼 깊이 있는 말로
사랑과 감동을 전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