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495/1128CATHERINE%20LABOURE%201.jpg)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St.Catherine Laboure) 수녀 , 환시자
축일 : 11월 28일
성인의 활동지역 : 프랑스(France)
성인의 활동연도 : 1806-1876년
성인과 같은이름 :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Catharina Laboure, 또는 가타리나)는 프랑스의
디종(Dijon) 근교 팽-레-무티에(Fain-les-Moutiers)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서
조에 라부레(Zoe Laboure)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8살 때 어머니를 여의였고 또 언니인 루이자(Louisa)가 파리(Paris)의
자비 수녀회에 입회하자 어린 나이에 삼촌의 카페에서 일을 하며 가사 일을
돌보아야만 했다.
그녀는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처지라 읽고 쓰는 것조차 배울 수가 없었다.
14살 때부터 수도성소를 느낀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를 극복하고 마침내 언니를
뒤따라 1830년 샤티용쉬르센(Chatillon-sur-Seine)에 있는 성 빈첸시오 드 폴
(Vincentius de Paul)의 파리의 자비 수녀회에 입회하여 카타리나라는 수도명을
얻었다.
지원기를 마친 그녀는 파리의 뤼 뒤박(Rue du Bac) 수도원으로 갔다.
그녀는 수도원 성당에서 일련의 성모 환시를 보게 되었는데,
이 환시에서 성모님은 당신이 원죄 없이 잉태하셨음을 표시하고 공경하는
메달을 만들라는 부탁을 여러 차례 하셨다.
그녀의 고해신부인 알라델(Aladel) 신부는 이 메달을 만들어도 좋다는 허가를
파리의 켈랑 대주교로부터 받고,
1832년에 처음으로 1500개의 만든 것이 즉시 백만 개의 메달로 불어나면서부터
유명한 기적의 메달이 된 것이다.
성녀 카타리나의 환시는 파리의 대주교가 임명한 특별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1836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이 결과 기적의 메달은 급속도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가게 되었다.
성녀 카타리나는 1831년부터 죽을 때까지 파리의 앙기앵(Enghien) 요양원에서
천한 일을 하면서 수도생활에 전념하였고,
고해신부에게만 자신의 환시를 늘 말씀드리고 지도를 받으면서 생활하였다.
그녀는 1933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7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1947년 7월 27일 로마에서 성인품을 받게 되었고,
교황 비오 12세는 성 가타리나 라보레를 ’침묵의 성녀’라고 부르셨다.
성녀는 성모님께서 발현하셨기 때문에 시성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종으로서 매일 깊은 신앙 안에서 성모님의 표양을 따라
겸손하게 사신 그분의 삶이 성녀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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