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남과 비교하지 맙시다.

ohjulia 2006. 3. 20. 05:21
2006년 3월 20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제1독서
사무엘 하권 7,4-5ㄱ.12-14ㄱ.16
그 무렵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제2독서
로마서 4,13.16-18.22
형제 여러분,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복음
마태오 1,16.18-21.24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오늘은 일어나기가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알람시계가 끝까지 다 울릴 때까지도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두 번째 알람시계가 울리기 시작할 때 겨우 일어날 수가 있었지요(물론 이 두 번째 알람시계에도 못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서 세 번째 알람시계도 있답니다). 그런데 억지로 일어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남들 자는 시간에 굳이 일어나서 묵상을 해야 하고, 글을 써야 하는가 라는 생각 말이지요. 새벽 묵상 글만 쓰지 않는다면 남들처럼 조금 더 잘 수 있는데, 그리고 편하게 신부 생활 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일까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제가 새벽잠이 없는 사람으로 아십니다. 그래서 새벽에 할 일이 없어서 묵상하고 글을 쓰고 인터넷에 올리는 줄로 아십니다. 하지만 저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아직도 알람시계가 없으면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새벽잠이 많은 사람입니다. 또 어떤 분은 제가 글 쓰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줄로 아십니다. 아마 책을 4권이나 출판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닙니다. 제가 얼마나 글 쓰는 것을 싫어하는데요. 원고 청탁을 받으면 그 청탁으로 인해서 며칠 동안 고민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재 저는 6년째 새벽 묵상 글을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이러한 행동들이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로는 귀찮을 때도 있고, 이 시간에 잠이나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묵상을 하고 글을 써 나갈 때, 조금씩 성장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체험을 통해서, 이밖에도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막아버렸던 적은 없었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즉, 내가 행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것인데 뭐...’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행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들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오늘 우리들은 성 요셉 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요셉 성인은 성서에서도 드러나듯이 결코 평범하게 사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잉태를 받아들여야 했으며, 에집트로 피난을 가는 등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요셉 성인께서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겠다고 하면서, 성모님의 잉태부터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구원 사업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내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행하지 않겠다는 생각들. 그 생각들이 어쩌면 하느님의 일을 막아버리는 생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요셉 성인을 통해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비교한다는 것. 나의 성장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일까지도 막아버린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남과의 비교보다는 주님의 뜻에 걸 맞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남과 비교하지 맙시다.



가장 멋진 인생이란('좋은 글' 중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가장 훌륭한 정치가는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되면 하던일 후배에게 맡기고...
미련없이 떠나는 사람이며

가장 겸손한 사람은 개구리 되어서도
올챙이적 시절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가장 넉넉한사람은 자기 한테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고 가장 강한 사람은 타오르는
욕망을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이며...

가장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이다.

가장 존경 받는 부자는 적시적소에
돈을 쓸줄 아는 사람이고
가장 건강한 사람은 늘 웃는 사람이며...

가장 인간성이 좋은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을 아낌 없이 주는 사람이고
가장 훌륭한 자식은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며...

가장 현명한 사람은 놀때는 세상 모든 것을
잊고 놀며 일 할때는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인격은 자기 자신을 알고
겸손하게 처신하는 사람이고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늘 일하는 사람이며...

가장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은
살아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이름이 빛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