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의 기쁨>
대부분 기업이나 조직이 그러하듯이 수도공동체에도 구성원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관리자들이 있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같은 경우 사목
전반에 대한 책임자인 원장, 사목의 재정분야 및 살림을 담당하는 재정담당자,
그리고 직접 실무를 담당하는 실무책임자가 있습니다.
은혜롭게도 저는 이러한 직무들을 골고루 경험했습니다. 언젠가 세 명의 형제가
마치도 이가 잘 맞아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서로를 존중하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잘 수행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 순간 공동체는 마치도 한 송이 싱싱한
꽃처럼 활짝 피어나더군요. 그리고 그 향기를 주변으로 퍼트리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반대로, 살다보니 서로 일치하기가 정말 힘겨울 때도 있었는데, 즉시 갈등이나
오해, 충돌이 발생하더군요. 서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을 때 즉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적절한 역할분담이 이뤄지지 않을 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분위기가 사라질 때 즉시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그 결과 결국 피해를 보는 사람은 공동체 구성원들이요,
아이들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때로 '일치하기가 정말 힘들구나, 어쩌면 이렇게 사사건건 충돌할까, 정말 같이
일하기 힘들구나, 방법이 없겠는가?' 고민하던 끝에 결국 가장 좋은 해법은
'삼위일체의 신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참된 일치가 무엇인지 가장 좋은 모델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계십니다. 삼위께서는 언제나 서로 굳게 결속해 계십니다.
늘 긴밀한 의사소통을 계속하십니다. 상호간 완벽한 일치 속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상호일치를 촉구하십니다.
상호일치의 완벽한 모델인 성삼위 안에서 성부께서는 성자께 대한 극진한 사랑을
지니고 계십니다. 성자께서는 성부의 극진한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철저한 순명을
계속하십니다. 협조자 성령께서는 미풍처럼 감미로운 사랑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인류구원 사업을 계속해 나가십니다.
하느님께서 삼위로 존재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에 대한 극진한 사랑 때문이 아닐까요? 언제나 방황하고 늘 흔들리는 나약한
우리 인간이기에, 삼위께서는 각자의 역할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때로 관대하고 자비하신 아버지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때로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어머니 모습으로도 다가오십니다. 때로 감미로운 바람처럼, 때로 장엄한
석양처럼, 때로 향기로운 꽃처럼 그렇게 다가오십니다. 협조자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그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어디로 가야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잡아주시는 이정표이십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보다 가치 있고, 무엇이
보다 우선하는 것인지를 식별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죄인인 우리와 죄인들 모임인
교회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신선한 바람이신 분, 그 바람으로 공동체를 일치시키시고
쇄신시키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매일 몸담고 살아가는 가정, 직장, 교회 공동체에서 늘 체험하는 바입니다만,
나와 다른 남들과 일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살아온 성장환경이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른
이웃들과 일치하려니 얼마나 피곤한 일이겠습니까? 달라도 철저하게 다른 남과 내가
일치에 도달하기까지 주고받는 상처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상처로 인한
통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때로 일치하자는 말만 들어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립니다.
차라리 포기하자는 유혹도 큽니다.
그럴 때 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돌아갈 곳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성삼위께서 지니고 계신 굳센 상호결속력, 상호인내, 상호헌신, 상호배려, 상호대화의
모습을 어렵지만 다시 한 번 우리 공동체가 건설해가야 할 일치의 모범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참된 일치는 성삼위께서 보여주신 모범처럼 자기 낮춤을 전제로 시작됩니다.
자기 본위의 삶을 탈피한 이타적 삶, 쉬지 않고 밑으로 내려가는 삶, 마음 크게 먹고
크게 한번 물러나는 삶을 통해 너와 나의 일치는 시작됩니다. 명예나 권세는 그것을
쫓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때 요원했던 일치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집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