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성당의 십자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봅시다.

ohjulia 2006. 6. 29. 05:33
2006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제1독서
사도행전 12,1-12
그 무렵 1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쳤다. 2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3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4 그는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짠 네 개의 경비조에 맡겨 지키게 하였다.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그를 백성 앞으로 끌어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5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6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7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에 빛이 비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
8 천사가 베드로에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 하고 이르니 베드로가 그렇게 하였다.
천사가 또 베드로에게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따라 나가면서도, 천사가 일으키는 그 일이 실제인 줄 모르고 환시를 보는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10 그들이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를 지나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 앞에 다다르자, 문이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어떤 거리를 따라 내려갔는데,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11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제2독서
디모테오 2서 4,6-8.17-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마태오 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신학교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앞에 있는 십자가를 우연히 그리고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제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이 갑자기 떠올려 지네요.

‘예수님, 정말로 못 생겼다. 예수님을 멋지게 표현한 십자가가 그렇게 많은데, 신학교 성당의 예수님은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물론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겠지요. 고통스러운 예수님의 표정을 더욱 더 드러내다 보니 이렇게 못생긴 모습의 형태가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득 ‘성지의 십자가는 어떻게 생겼더라?’라는 의문이 생겼어요. 예수님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는지 아니면 왼쪽으로 기울어졌는지……. 예수님의 어느 발이 위로 올라가 있는지……. 예수님의 손바닥에 못이 박혔는지 아니면 손목에 박혀있는지…….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날씬한지 아니면 통통한지 까지도 긴가민가한 것입니다.

매일 이 십자가 앞에서 미사를 봉헌했고, 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기도도 했으며, 더군다나 이 십자가를 제작 의뢰했던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사람이 만든 예수님의 겉모습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십자가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내 모습에서, 혹시 보이지 않는 주님이라고 해서 역시 대충 대충 알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냥 좋으신 분이라고, 그냥 사랑 자체이신 분이라고, 그냥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라고……. 이런 뜬구름 잡기 식의 고백만을 앵무새처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정말로 자세히 봐야 십자가를 보지 않아도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것처럼, 주님에 대해서도 알기 위해서 그리고 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때 사람들에게 주님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시지요. 이에 베드로가 정답을 이야기합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런 정답을 통해서 하늘나라의 열쇠까지 베드로는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서 말리다가 사탄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는 행동을 하지요. 과연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아직 성숙되지 않은, 즉 겉으로만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요? 단순히 미사 한 번 참석으로, 묵주기도 한 번으로, 화살기도 한 번으로, 그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성당의 십자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봅시다.


생각한대로 됩니다(최용우, '햇볕같은 이야기' 중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밥을 먹을 수도 있고 김치를 먹을 수도 있습니다. 콩자반이 싫으면 안 먹을 수도 있고, 멸치볶음이 좋으면 멸치볶음만 먹을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켤 수도 있고 컴퓨터를 켤 수도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춤을 출 수도 있습니다. 하품을 할 수도 있고 '대~ 한민국' 응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데 어떤 강력한 힘이 강제로 억눌러서 못하게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생각한 대로 안 돼"

흔히 생각대로 안 된다고 합니다.

왜 안됩니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생각도 우리 몸의 기능의 한 부분입니다. 어떤 강력한 힘이 강제로 억눌러서 생각한 대로 못하게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육체는 자신의 능력 이상은 안되지요. 하지만 생각은 그게 가능합니다.

거기에 믿음이 더해지면 못할 일이 없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