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ing/♩old Pops & etc...

공감

ohjulia 2006. 9. 15. 08:19

*개별듣기*


01. Londonderry Air 

02. Summer Time 

03. Amazing Grace Arirang 

04. Auld Lang Syne 

05. El Condor Pasa 

06. Holy Night 

07. 대금-피아노 시나위(Taegum-Piano Shinawi) 

08. 강원풍류(Kangwon Poongryu) 

09. 즉흥 연주 I 

10. 즉흥 연주 II 

11. 즉흥 연주 III 


앨 범 명 : 공감 
아티스트 : 임동창&이생강   
앨범장르 : 가요 , 국악 , 기타    
발 매 일 : 1998.02.10  
앨범의 전반부가 세계의 보편적인 음악팬을 위한 선물이라면 우리의 민속음악과 
즉흥연주를 담은 앨범의 후반부는 이 앨범의 핵심이자 세계음악의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질문이다. 특히 ‘대금-피아노 시나위’로 명명된 일곱 번째 곡은
단순한 실험과 모색의 차원에서 벗어난, 장르와 역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탁월한 
이중주이다. 임동창이 건반과 현의 뮤트를 통해 인도하는 남도 길군악의 오채질굿
가라그이 기기묘묘한 장단과 이를 바탕으로 모든 세속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펼치는
이생강의 도도한 대금은 90년대 한국이 가장 지극한 음악의 비경이다.
만남을 위한 만남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러나 진정한 만남은 우리의 고정관념의 둑을
무너뜨리고 풍윤한 자유의 씨를 뿌린다. 임동창과 이생강의 만남이 바로 그러하다.
흐르는 곡 El Condor Pasa는 남미 페루의 민요인데 Paul Simon이 가사를 붙여 팝의 명곡
이 되었다.El Condor Pasa를 이생강 선생과 피아노의 귀재 임동창이 함께 연주한 
곡으로 여기 나오는 관악기는 이생강 명인이 연주한 우리 전통악기 퉁소입니다.
대금산조 인간문화재/이생강
한국 전통관악기를 모두 연주하는 명인중의 명인이신 이생강님은1960년 초, 우리가
근대화를 외치며 가난을 탈출 하고자 땀흘리던 그 못살던 시절, 한국의 전통음악을 
알리는 프랑스 무대에서 대금산조 독주로 서구 뮤지션들의 경탄을 자아냈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50여년 세월동안 국내와 해외 수 백개 국을 돌면서 한국음악의 독창성과
예술성을 선양해 왔던 이생강 명인!
작은 구멍에서 우러나오는 대금 소리는 우리들 가슴속에 숨어 있는 한을 내뱉는 듯 
처절하다. 세월이 준 신들린 바람 소리는 온전히 그의 것이다.대금 산조의 명인
한주환 선생을 사사했으며 피리 단소 태평소 등 관악기를 두루 섭렵했다. 
단소 산조를 부활시켰고 반주 악기로 여겨지던 대금을 독주 악기 반열에 올렸다. 
1960년대 말부터 대금과 서양 악기와의 협연, 대금을 이용한 가요 팝 재즈 연주 등을 
시도해 ‘퓨전 국악’의 원조로 불린다. 

국악에서 재즈까지 음악의 연금술사/임동창
종잡을 수 없는 임동창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많은 단어를 동원한다.
괴짜 피아니스트는 한물간 표현이고, 컬트 피아니스트는 2년 전 유행어다. 
요즘은 퓨전 음악가란 말이 간간이 쓰이지만 그가 원치 않는 버터냄새를 너무 풍긴다.
차라리 빡빡머리 혹은 대머리 피아니스트라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음악계의 이단아라 하면 좀 심각해지고, 그가 조직한 젊은 음악인 모임 '쟁이골' 
촌장이란 말이 제일 친근하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가리켜 '기인(奇人)'이라 하고 
그는 '그냥 임동창'으로 불러달란다. 
임동창 음악을 가리켜 국악이냐 양악이냐, 저 사람이 피아니스트냐 아니냐
헷갈려 하는 것은 그의 음악을 이루는 성분이 남달리 복잡하기 때문이다. 
속세에서 사람 가리는 데 가장 중요한 '대학교 졸업장'이나 받았는지 의문스럽고, 
또 음악계에 끼는데 필수적인 누구누구 제자, 무슨 콩쿠르 출신'이라내세울 것도 없다. 
그런데 누구도 딴죽 걸기 어려운 달변이고, 아는 건 또 왜 그리 많은가.
도대체 어디서 굴러나온 사람인가.
그래도 그의 직업 중 제일 앞에 소개되는 것이 피아니스트다. 
사실 그는 피아노를 군산남중 2학년 때 처음 봤다. 처음 듣는 순간 투명한 피아노 소리에
미쳐버려 그날로 헌책방에서 피아노 교본을 구해다 교회 피아노를 가지고 연습했다.
“한번 제대로 배워봐야 쓰겠구먼” 하고 찾아간 것이 당시 군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이길환 선생 음악학원. 동창의 재능을 아껴서 먹이고 재워가며 피아노를 가르쳐준
선생님 밑에서 5년. 그 사이 피아노 실력은 독주회를 열 정도로 일취월장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작곡에도 손을 댔다. 물론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미친 듯 
베토벤이니 모차르트니대가들의 음악을 들으며 작곡이란 걸 배웠다. 
여기까지는 어린 동창의 재능을 누구보다먼저 발견한 스승의 안목에 그의 천재성이
발현되면서 왕성하게 서양음악을 탐식하던 시기다.그리고 고교 졸업 후 돌연한 입산.
그의 음악과 입산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밤중에 작곡한다고 오선지 앞에서 끙끙대는데 선생님 주무시는 방에서 괘종시계가
 땡땡땡 하고 세 번 치데요. 그런데 내 방 시계를 보니 자정이더란 말입니다. 
참 이상하다 해서 선생님께 ‘지금 몇 시예요?’ 했더니 ‘3시다’ 하시는 거예요.”
남들 같으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일이라고 곧 잊어버렸겠지만 임동창은 마치 괘종시계가
자신의 머리를 울리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길로 용화사에 들어가 보림이라는
법명으로 1년 넘게 수도생활을 했다. 군 입대 문제로 하산하기까지 그는 피아노나 음악 
따위는 딱 끊고 복식호흡과 수식관을 배웠다. 당시 큰스님으로부터 받은 ‘이 뭐꼬’라는
화두는 나중에 그의 음악(수행음악 ‘이 뭐꼬 1, 2’ 작곡)으로 되살아난다. 
이 시기, 그는 아예 음악을 딱 끊고 마음공부에 열중하면서 남의 것(서양음악) 열심히
외워 연주해봤자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군제대후 그는 절로 돌아가지 않고,
세상에 자신의 재주가 통하는지 시험해 보기로 한다. 군악대 선배들이 신중현 밴드에 
들어오라고 권했지만 음악학원 선생 쪽을 택했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그의 제자들은 다양했다. 4개월쯤 지나니까 음대에 다니는
학생들이 소문 듣고 찾아오더니 나중에는 곡 해석을 놓고 의논할 게 있다며 전문
피아니스트가 찾아오기도 했다.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그에게 전문연주가가 
음악을 한 수 가르쳐달라고 찾아오니 별꼴은 별꼴이었다.
“악보만 딥다 판다고 음악이 되나. 몸과 마음이 하나 돼야 예술이 나오지. 
피아노는 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피아노가 돼야 한당께.”
‘다른 사람들은 무슨 공부를 하나?’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겨 최동선 교수를 
찾아간 것이 84년, 스물여덟 살이었다. 최교수의 권유로 다시 학력고사를 공부해
85년 서울시립대 작곡과 수석입학. 천재라고 하기에는 너무 쑥스러운 스물아홉이었다.
대신 조교급 1학년생으로 최교수의 작곡발표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맡는등 맹활약을 했다.
하지만 화려한 학창생활과 달리 졸업과 함께 회의가 밀려왔다. 그때 다시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임동창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 김덕수패 
사물놀이와 어울려 공연을 하면서부터다. 사물놀이에 조금만 관심이 있고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당시 김덕수패 전용무대였던 신촌 난장에서 민둥머리 피아니스트가 
사물놀이에 맞춰 신나게 놀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이미 서른 중반.
힘과 기가 넘쳐흐르는 임동창의 연주와 몸짓에 “도대체 저자가 누구여”라는 소리가
여기저기 튀어나왔다.
“기억으로만 전해지던 사물놀이에 처음 채보란 걸 시작했소. 내가 그래도 서양음악이란
걸 좀 아니까 해보자 했지. 그런데 덕수형이랑 맘이 안 맞는 거야.‘이건 해봐야
아는 거여’라고 큰소리만 치는데 그런 식으로는 일반인에게 전수가 안 되잖아요.
덕수형이 ‘이것은 큰 호흡이여’라고 하면 내가 얼른 악보로 적었죠. 
사실 만날 쌈만 했어요.”
그 와중에 ‘정간보’ 1, 2집이 완성됐고 임동창은 국악의 깊은 맛에 푹 빠진다.
95년 8월29일 연강홀에서 가진 첫 독주회를 전후로 그의 무대인생이 만개한다.
그 사이 연극음악도 하고 무용음악도 하고 93년에는 첫 창작음반 ‘신아위’와 95년
74분짜리 즉흥연주음반 ‘천국인간을 내기도 했지만, 임동창 음악의 진수가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역시 연주회였다.
96년 연강홀 연주회, 97년 장사익·이생강과 한 무대에 선 ‘공감’ 공연, 예술의 전당
독주회, 국악에서부터 행위예술가까지 국내 재주꾼들을 몽땅 모아 펼친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 공연, 98년 불가식 메뉴의 호텔 디너쇼, 99년 4월 안동 수몰지구 폐가 연주등
그는 숱한 화제를 뿌렸다. 그 사이 불가 수행법 ‘수식관’을 토대로 한 일곱 번째 음반 
명상(2장, 악 레이블)을 발표하며 오랜 실험과 방황 끝에 거듭 태어나는 계기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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