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9월 21일)

ohjulia 2006. 9. 21. 06:08


**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성 마태오 복음 사가 축일
      
    성 마태오  (St.MATTHEW the Apostle)  사도, 복음 사가
    성 마태오(Matthaeus)는 원래 가파르나움에서 로마(Rome)를 위해 세금을 
    걷는 세리였으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아마도 그는 갈릴래아 태생인 듯 보이며 레위 지파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60-90년 사이에 기술된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이며, 아람어로 
    기록하고 동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 
    어떤 학자들은 이 복음서는 70년 이후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기록되었다고도 생각한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는 유대아를 순회하며 전교하다가 동방으로 갔으며, 
    로마 순교록에는 그가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고도 한다. 
    그는 은행원과 장부 기장자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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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오는 유대인으로서 로마의 권력을 위해 자기 동족으로부터 세금을 거둬
    들이는 일을 하였다. 
    비록 로마인들이 모조리 빼앗아 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중요한 관심은 자기의 돈주머니였다.
    그들은 세금 징수 청부인이 거뒤들인 금액에 관해서는 마음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금 징수 청부인들은 ’세리’로서 알려졌고, 그들 동족들에게는 
    반역자로 미움을 받게 되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을 ’죄인’들로 취급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같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을 가까이 부르셨다는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더욱이 마태오가 자기 집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푼 것은 예수께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복음은 ’많은’ 세금 징수인들과 ’죄인들로 알려진 사람’이 그 만찬에 
    왔다고 전한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더욱 더 충격을 받았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의식과 예배를 멀리하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이웃 사랑이 한층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신약에서는 마태오에 관한 다른 특별한 사건들이 보이지 않는다.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만 직업으로 판단하여 사도직에 
    적합할 만큼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예수께서는 교회의 반석 중 
    한 사람으로 뽑으셨다.
    그러나 그는 예수께서 부르러 오셨을 때 자기가 죄인들 중의 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데 아주 정직했다.
    예수께서 그를 보셨을 때 그는 진리를 인식하기에 충분할 만큼 마음을 열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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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 입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붓으로도 전교를 하여 
    복음 사가(福音史家)라는 칭호를 받은 분이 두 분 있다. 
    한 분은 예수의 애제자(愛第子) 성 요한 사도요, 또 한 분은 4복음서 중 
    제일 앞에 나오는 복음서를 저술한 성 마태오 사도이다.
    마태오의 옛 이름은 레위로 유다인인데,당시 그나라를 점령한 로마 제국의 
    세금 수금 관리로 주님의 제2고향이라고도 볼 수 있는 가파르나움 세관에서 
    근무했다.
    그 당시 세무 관리(稅務官吏)들은 규정된 세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여러 가지 부당한 행위를 하며 사람들을 착취해 사용을 채우는 직업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세리를 독사와 같이 싫어했으며,조국인 유다를 배반하는 자로 취급했고, 
    때로는 세리와 죄인을 합쳐 같은 뜻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마태오도 다른 세리와 같이 부정한 행위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간 재산을 많이 모았고, 제자들 중에서 가장 학문과 사교에 뛰어난 분이었다.
    복음서에서 알 수 있는 점은 그는 다른 복음 사가와는 달리 당당히 자기 전직을 
    명기한 것으로 보아 그가 얼마나 겸손지덕이 뛰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마태오가 언제 주님과 친근해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주님께서 
    가파르나움 지방을 자주 왕래하셨으므로 아마도 공생활 초기였으리라고 추측된다.
    어떤 날 그는 여전히 세관에 앉아 있을 때 주님께서 지나가시며 "나를 따르라"는 
    고마운 말씀을 하셨다.
    마태오가 전부터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생각을 가졌었는지는 모르나 
    "나를 따르라"는 이 한마디 말씀에 즉시 수입이 많은 세리직을 버리고 
    그 제자의 일원이 되었고, 이에 감사하는 뜻으로 마태오라고 개명했다.
    이는 ’주님의 은덕을 받은 자’라는 의미다.
    그 후 그가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기념으로 예수와 그의 제자는 물론 지식인과 
    친구들까지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바리사이들이 주님의 제자들에게 당신들의 스승은 어찌하여 비난받는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식사를 같이 하느냐고 비난을 했을 때,
    주님께서는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합니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하시며 
    책망하신 것은 바로 이때의 일이다.
    마태오는 모든 고난을 주님과 함께 했으며,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그는 다른 
    제자와 더불어 주님의 부활, 승천에 대한 증인이 되었고,성령을 받은 후 9년간 
    유다 지방에 머물러 전교를 하고 42년에 타국으로 전교를 떠나기 전에 복음서를 
    저술하고, 사도들의 설교로 입교한 신자들의 신앙을 북돋아 주고자 했다.
    이 복음서는 아람어로 저술되었는데 이는 당시 유다인들이 잘 읽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전교하기 위해 이디오피아로 향하여 복음을 전파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그 어느 곳에서고 무수한 사람을 개종시켰으며, 
    에우지포왕의 왕자를 중병에서 기적으로 구출한 결과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까지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었다 하며, 이제피아라는 공주는 동정으로서 
    하느님께 일생을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힐타코라는 사람이 왕위에 올라 이피제이아의 미모를 사랑하고 마음에 
    두어 그녀를 왕비로 취하려 했으나 그녀가 단호히 이를 거절하자 왕은 대단히 
    분노하며 그것이 마태오 사도의 술책이 아닌가 생각하고 이에 증오심을 품고 
    사도를 잡아 갖은 고문과 형벌을 가한 후 그를 땅에 못박아 죽게 했다.
    때는 90년경이며, 그의 유해는 후에 남 이탈리아의 살레르모에 이송되어 
    오늘날까지 그곳에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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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사가. 축일은 9월 21일. 12사도의 한 사람(마태 10:3, 마르 3:18, 루가 5:27).
    마르코 복음서 2장 14절, 루가 복음서 5장 27절의 두 군데서 그를 레위(Levi)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완전한 성명은 '레위 마태오'이다.  
    알패오(Alpheus)의 아들(마르 2:14)이고, 예수에게 불려가기 전까지는 로마제국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가파르나움의 관리였으며(마태 9:9), 주를 따르라는 소명을 
    받은 후 자기 집에서 예수를 위해 연회를 베푼 것으로 보아 상당히 부유했던 것 
    같다(루가 5:29).  
    성령 강림 후 팔레스티나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데, 그 장소는 에티오피아·
    페르시아 ·파르티아(Parthia) 등 여러 설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리스 신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Titus Flavius Clemens, 150년경-
    215년경)에 의하면 마태오는 채식주의자였으며, 12사도는 아무도 순교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에 반해서 다른 외전(外典)의 마태오 행록에는 화형(火刑), 돌에 의한 순교로 
    언급하고 있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 에티오피아로부터 페스툼으로, 다시 10세기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Salerno)로 옮겨졌다. 
    축일은 라틴교회에서 9월 21일, 동방교회에서는 11월 16일, 코프트교회에서는 
    10월 9일이다. 
    복음사가로서 마태오는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인간(후에는 날개가 달린 천사)으로 
    상징되고 있으며, 사도로서는 책·칼 또는 창이 표호(票號)가 되고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