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영성의 향기

십자가의 성 요한의 생애와 영성-7

ohjulia 2006. 10. 30. 04:34

5. 제 2 부의 소결

나무라면 무엇보다 나무가 되어야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다. Thomas Merton, 『명상의 씨』, 조철응 역, 서울, 가톨릭출판사, 1980, p.19.

성인(聖人)은 우리 가운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그들을 알아보지는 못한다. 우리는 성인이 이 땅 위에 살 수 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Louis Lavelle, 『성인들의 세계』, 최창성 역, 서울, 가톨릭출판사, 1992, p.15.
십자가의 성 요한은 성인이기 이전에 하느님을 가슴깊이 사랑하던 한 인간이었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성실하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서, 특히 형제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한 진실되고 단순한 한 영혼이었다.
하지만 가장 진실된 사람이라도 자신의 진실성에 대해 언제나 회의를 느끼게 되고 이러한 회의를 우리는 겸손이라 부른다. 이러한 겸손은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성 자체의 척도이기도 하다. 단순성은 신비롭게도 모든 것의 동일성을 실현한다. 본래 단순성은 이중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이 분열되기 이전의 위치에 자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순성에는 언제나 완전히 순결함과 투명함이 있으니, 이 순결성과 단순성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소란스러움이나 자신을 주장함이 아니다. 그래서 단순성이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단순성이 자신을 비우고 無(nada)로 돌아가 오직 하느님만이 그 안에 존재하는 최고의 영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기에 성인은 추상(抽象)을 모른다. 성인은 완전히 현실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은 그 본질을 따라 이 감각적 세계와 영적 세계의 연결점을 찾아 얻으려고 하지만, 성인은 이미 이들의 단일성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같은책, p.27.

십자가의 성 요한의 삶이 그러하다. 그는 그리스도를 사랑하였고 그의 신앙에 있어서 오직 유일의 이상향으로 삼았다.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는 그리스도처럼 살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의 삶의 길이요 구원으로 이끄는 열쇠였다. 거기에는 어떠한 주저함도 있지 않다. 곧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산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일상적 삶과 괴리되게 보이고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지만,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있어서 그의 그 철저한 삶은 진실성이었다.
그렇다고 십자가의 성 요한이 세상을 등지고 오직 신비만을 쫓지도 않았다. 라스부바스 병원에서 그의 환자들에게 보여 주었던 봉사, 사제가 되어서 많은 여행을 하면서 사도들처럼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던 열성, 아빌라 강생 수녀원의 고백 신부로 있으며 소외받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거주하며 그들과 기쁨과 슬픔, 고통과 괴로움을 함께 나누던 연민의 사랑 등은 그가 진정으로 세상에 열려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성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도피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도리어 이 세상을 비추어 주며 내적 반향인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해준다. 이런 반향이 없다면 이 세상은 허공에 떠 있는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이었다. “인간이 품고 있는 단하나의 생각이 온 세상보다 가치롭다. 그러므로 하느님만이 인간이 추구할 가치가 있다.”(소품집, <빛과 사랑의 말씀> 32) 여기서부터 요한의 새로운 태도, 보다 더 깊은 관상적 태도가 생긴다. 인간의 가치가 확대되고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16세기의 르네상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성 요한은 우리에게 참되고 성숙한 인간상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고유성에도 불구하고 창조주이신 하느님 안에서만 자신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둔밤이란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진실된 길이며, 참 인간을 이루어 주는 현실이다. 어둔밤을 통해서 하느님과 하나되고, 그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만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교적인 자아실현이다. 나무가 그 뿌리를 살진 토양에 깊숙히 박고 있을 때만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인간도 근원이신 하느님께 뿌리를 박고 하나가 되어,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하느님과 세상에 열려 있는 겸손하고 진실된 모습으로 서게 될 때 비로소 구원이 열리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비워지는 그곳에 곧 하느님이 자리하시게 되기 때문이다.

**에밀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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