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stance/▲ 삶의 윤기

전 어쩌면 좋을까요

ohjulia 2006. 12. 28. 01:12
배경음악 : 안단테 - 그녀의 눈물
  전 어쩌면 좋을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새벽편지는 항상 메일로 접하고 있으면서도
편지를 쓰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너무나도 어이없고 가슴이 아파서 가슴을 움켜쥐고
서러운 마음에 일주일 내내 울다가
이렇게 편지를 써봅니다.

전 어려서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로 인해
부잣집에 팔려갔었습니다.
7살 나이에 뭘 알겠어요.

그 집에 가서 청소며 빨래며 집안일을 했고
몸은 시퍼렇게 멍들도록 매일 맞았었습니다.
그렇게 지낸 10년간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한 적도 없었습니다.
'나에게도 언젠간 행복이라는 놈이 올 거야’
하는 마음으로 꿈을 키우며 살았으니까요.

제 나이 16살 되던 해에 아버지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미안하다며 미국으로 가자는 말과 함께 이제까지
못해준 행복한 가족의 정을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 자체도 허황된 꿈이라는 건
미국에 도착한지 3일 만에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는 가게에서
17시간을 서서 일해야 했으니까요.
일요일도 없는 그런 나날...

학교에 보내주고 배우고 싶은 거
다 해주겠다던 우리 아버지는 결국
저를 일하게 하려고 부르신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 할 때마다 일주일을
못 일어날 정도로 맞아야 했으니까요.
그런 아버지가 증오스러웠고 너무 미웠습니다.

영어도 못하고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었지만
그래도 더 있다가는 제명대로 못 살 거라는
생각 끝에 집을 나왔습니다.

정말 안 해본 일 없이 일만 하며 살았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세탁소에서 일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가게,햄버거 집에서 일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옆도 뒤도 안돌아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셨다는 소식도 들었고
그곳에서 새엄마 하고 배다른 동생이
잘 산다는 이야기도 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젠 거의 15년이 흘렀죠.
저희 할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도 없고 그렇게 아껴주며 같이 산 분도 아니지만
그래도 할머니이기에 전 장례를 치르러 그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아버지는
예전과 달리 저에게 너무나도 잘해주시고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속에서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었으니까요.

그런데 장례가 끝나고 아버지가 저에게 그러시더군요.
"동생 보러 가야지..."
전 "어디 있는데요?" 하고 물었지만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차에 올라타 도착할 때까지 침묵으로 있었지요.
제가 간곳은 병원이었습니다.
그 때 알게 되었지요.
동생이 당뇨병에 걸려서 눈을 잃고 이제는
신장까지 나빠져서 이식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을요.

아버지는 저에게 말씀하시더군요.
"참으로 불쌍한 아이다. 네 동생은...
난 너무 늙어서 이식수술을 못해준단다.
형제면 몰라도 부모는 안 된다더구나."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으로 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아버지는
저에게 전화를 합니다.
전 어쩌면 좋을까요...


- 서 시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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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에 소개된 이 아픈 사연의 주인공 '서시' 님은
가족님들의 격려가 가득 담긴 메시지를 받고
감동이 목젖까지 올라왔다며,
거듭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동생에게 신장을 이식해 주기 위해 상담을 받았지만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으며,
또한 목숨보다 소중한 어린 아들을 키워보니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고 있다는 근황을 알려왔습니다.

사랑은 바위도 녹인다죠.
가족님들의 사랑과 격려로 언젠간 그 미움도
눈처럼 녹을 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부디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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