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토니오 아빠스](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572/0117St.anthony.jpg)
성 안토니오 아빠스 (Saint ANTHONY the Abbot) 은수자
성인의 활동지역 : 이집트(Egypt)
성인의 활동연도 : 251-356년
성인과 같은이름 :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토니우스, 앤터니
성 안토니오는 251년 이집트의 고만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해 입신 출세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세상의 허무함을
깨달은 그는 예수의 "당신이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당신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오"(마태 19, 21)하신 말씀을 글자
그대로 실행하려고 결심했다.
양친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유산의 절반을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주고
그녀를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고 나서, 자신은 사막(沙漠)에 들어가
어떤 노수사의 지도하에 완덕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얼마동안 덕을 닦고 난 뒤 안토니오는 더욱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은사의 슬하를 떠나 더욱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무덤과 같은 굴에 살면서 오로지 노동과 기도로써 경건히 날을 보냈다.
그러나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
다닙니다."(1베드 5, 8) 하신 말씀과 같이 악마는 열심한 안토니오를
그냥 두지 않았다.
어떤 때는 세상의 쾌락에 대한 상상이나 동경심(憧憬心)을 일으켜 주고,
어떤 때는 이런 은수 생활은 자기를 돌보지 않은 무모한 짓이므로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으니 빨리 세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등 온갖 유혹으로써 그의 거룩한 이상을 방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안토니오가 맹렬한 유혹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도를 더 할수록,
마귀는 더욱 그의 마음을 산란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의 추악한 모양을
그의 눈앞에 그려내고, 어떤 때는 채찍으로 그를 때려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괴롭게 했다. 그러나 그는 밤이나 낮이나 항구히 마귀와 싸워 결코 마귀의
유혹에 떨어지는 때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 그에게 성스러운 평화가 찾아오고 다시 주예수의 형상이
나타났을 때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게 된 안토니오는 "주님, 저 무서운 유혹을
당하는 동안 당신은 어디 계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를 돌보지 않았습니까?" 하고
공손히 원망 비슷하게 말하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한다.
"안토니오야, 나는 네가 유혹을 당하는 동안 잠시도 네 옆을 떠나지 않고,
네 노력의 여하를 보고 있었다. 이제는 안심하라. 마귀는 이후 절대로 네게
유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안토니오를 위해 생활을 보살펴 준 이는 그의 친한 친구였다.
그는 안토니오가 만든 성물들을 시장에 가서 팔아 그 돈으로 필요한 양식을
사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필연코 이 친구로 인해 전해졌겠지만, 오래지 않아 성 안토니오의 감탄할 만한
일상 생활이 사방에 퍼지자, 수도(修道)생활에 희망을 품은 청년들이 계속
찾아와서 그의 지도를 받았다.
안토니오는 혼자서 은수 생활을 하는 것보다 공동으로 생활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더 적합하리라는 생각으로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들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이번에는 관리나 상인이나 그밖에 여러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완덕의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지금은 안토니오 산이라고 부르게 된 고르팀
산에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과 더불어 수덕에 전심전력했다.
성 안토니오 임종 시에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찾아와서
영성상에 관한 지도를 받거나 안토니오 및 제자들의 기도를 청햇다.
그 중에는 콘스탄타노 대제와 두 황태자도 끼어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도 대제(大帝)는 사막까지 가지 못할 경우에는 편지로써 안토니오의
기도와 회답을 청했고, 성 안토니오는 이에 대해서 올바른 정치를 행하며,
가난한 이를 구제해야 될 것을 권면했다고 한다.
성 안토니오는 104세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아타나시오를 위해서 일반 민중의 청원을 듣고, 그 읍에 가서 아리우스파의
이단에 미혹된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설교를 했는데, 그 고결한 풍채에
접하고 그 이치 있는 말씀에 감동되어 진리의 길로 돌아선 이는 참으로 많았다.
이와 같이 사명을 마친 성인은 세 번째 정이 든 사막에 돌아가서 오래지 않아
거룩한 일생을 마친 것이다.
그때 그는 105세였었고 유해는 제자들로 하여금 정성되이 매장되었다.
성 안토니오는 "사막의 교부"로도 불린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성 안토니우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전해진 이유는 그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던 성 아타나시우스가 기록한 “안토니우스의 생애”(Vita Antonii)가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 사막의 은수자들이 환상이나 혹은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혜로우며 영적인 사람임과 동시에 학문이 뛰어났으며 하느님을
섬기는 생활이 엄격하였다고 한다.
성 안토니우스는 생전이나 사후나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에 대한 공경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하느님의 종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성 안토니우스는 ‘사막의 교부’, ‘모든 수도자들의 원조’,‘은수자들의 아버지’
로도 불린다.
그의 휘장으로 묘사되는 그림은 돼지와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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