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필요 없는 일정을 정리하여 봅시다. 중요한 것만 하기에도 이 세상은 너무나 바빠요.

ohjulia 2007. 3. 23. 07:03
2007년 3월 23일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제1독서 지혜서 2,1ㄱ.12-22

1 악인들은 옳지 못한 생각으로 저희끼리 이렇게 말한다.
12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13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14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15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16 그는 우리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17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18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19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21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22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복음 요한 7,1-2.10.25-3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2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25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26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7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29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30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판공성사, 강의, 미사, 십자가의 길, 각 단체 모임, 인터넷 방송과 새벽 묵상 글, 면담 등등……. 부활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제 수첩의 일정표에는 더 이상 무인가를 적을 공간이 없을 정도입니다. 어제도 수첩을 보면서 한숨만 나오더군요. 이것들을 언제 다 할 것인지……. 일이 있다는 것은 그리고 바쁘게 산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다는 것으로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이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괜히 신경질도 납니다.

우연히 지난 달 일정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달 역시 이번 달 못지않게 바빴더군요. 아니 이번 달보다도 더 바쁜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쁜 일정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별 무리 없이 지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복잡한 문제여서 며칠 동안 고민했던 것들도 지금 뒤돌아보면 모두 잘 해결되었음을 알 수 있었지요.

분명히 저의 힘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이었는데, 또한 시간이 부족해서도 끝낼 수 없을 것 같았는데요.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돌아보니 모두가 해결되어 있었습니다.

너무나 쓸데없는 곳에 걱정을 쏟아 붓고 있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신경 쓸 곳도 많은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곳에 신경을 씀으로 인해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000년 전의 유다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탄생 때, 동방박사의 방문으로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베들레헴’이 메시아 탄생 장소라고 헤로데에게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이미 메시아 탄생 장소가 어딘지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메시아의 탄생 장소를 알지 못해야 한다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 구세주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억지를 보입니다.

더군다나 중요한 것은 메시아의 탄생 장소가 아니라, 메시아가 전해 주는 말씀과 행적인 것이지요. 사실 예수님의 말씀과 그동안 하신 행동들만 보아도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잘못된 정보에만 매달려서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모습을 취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잘못된 확신들로 인해서 쓸데없는 걱정과 헛되게 시간낭비만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함으로써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나는 어떤 것에 온 힘을 쏟고 있나요? 2000년 전의 유다인들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가 아니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필요 없는 일정을 정리하여 봅시다. 중요한 것만 하기에도 이 세상은 너무나 바빠요.



다른 문은 반드시 열린다('행복한 동행' 중에서)

AD 79년 8월 24일, 이탈리아 나폴리의 연안에서 활화산 베수비오가 폭발했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의 길목에 위치한 폼페이는 농어비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성했고 많은 이가 살고 있어 인명 피해가 컸다.

영국의 소설가 에드워드 리턴은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그린 '폼페이 최후의 날'이란 작품을 내놓았다. 소설 속 주인공 니디아는 꽃 파는 눈먼 소녀다. 비록 앞을 보지 못하지만 이런 처지를 비관하거나 슬픔에 빠지지 않았고,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더니 순식간에 폼페이가 짙은 연기와 먼지로 가득 뒤덮이게 되었다. 대낮임에도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컴컴했고, 사람들이 놀라 허둥대며 출구를 찾아 헤매느라 도시 전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니디아는 원래 앞을 보지 못하는 데다 지난 몇 년 동안 골목골목을 누비며 꽃을 팔았기 때문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촉감과 청각에 의지해 통로를 찾아냈고 수 천 명이 사망하는 대재앙 속에서도 많은 이를 도와 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불행이 행운으로 뒤바뀐 것이다.

에드워드 리턴은 이 작품을 통해 말한다.

"운명은 공평하다. 니디아의 한쪽 문을 닫아 버린 대신에 또 다른 한쪽 문을 열어 주었으니까. 그리고 이것은 니디아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