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양 승국 신부님의..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ohjulia 2007. 5. 23. 07:00


 
    월 23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요한 17장 11-19절 “아버지,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언젠가 데리고 있던 한 아이 부친의 임종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쓸쓸하고 서글픈 임종이었습니다. 한번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쳐봤지만 하는 일마다 꼬였습니다. 거듭되는 실패에 가정은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는 건강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아이는 시설을 전전하다가 저희를 만났습니다. 임종을 며칠 앞둔 늦가을, 아이와 함께 아버지의 병실을 찾았을 때, 아직 갈 길이 창창한 젊은 아버지는 벌써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시더군요.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제게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신부님, 면목이 없습니다만, 저 아이 잘 좀 부탁드립니다.” 홀로 세상에 남게 될 유일한 혈육인 아이가 얼마나 걱정이 되었던지 아버지는 말도 하기 힘든 상황에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 하시더군요. 저 역시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아이 아버지를 안심시켰습니다. “아버님, 아이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고 빨리 기운 차리세요. 제가 아들처럼 생각하고 잘 키우겠습니다.” 영정 사진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이 아버지의 영안실은 시끌벅적한 옆 영안실과는 너무나 비교가 되어 서글펐습니다. 늦게야 연락을 받고 달려온 먼 친척 한명 외에 조문객이라고는 눈을 씻고 둘러봐도 없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쓸쓸한 영안실을 지키는 내내 아이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 아이 잘 좀 부탁드립니다.” 요즘 계속되는 복음 말씀의 주제는 예수님의 고별기도입니다. 아버지께로부터 이 세상에 파견되어 오신 예수님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실하게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하신 다음, 이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기 직전입니다. 떠나가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유언과도 같은 기도를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데, 그 기도의 핵심은 바로 “이 아이들 잘 부탁드립니다”입니다. 예수님의 고별기도 한 말씀 한 말씀은 이 세상에 남겨질 우리들을 향한 절절한 사랑이 담긴 말씀입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가시는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 아쉬운 마음, 애끓는 마음이 잘 담겨있습니다. “아버지,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시오. 아버지,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를 여윈 자녀들이 선친을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삼년뿐만 아니라 오년간 아버지 무덤을 떠나지 않고 매일 곡을 하며 애도를 표하는 것일까요? 망부석이 삥 둘러선 최고급, 초대형 묘지에 안장을 해드리는 일일까요? 아니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제사상을 잘 차리는 일일까요? 그도 아니면 아버지 없는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며 식음을 전폐하는 일일까요? 저 세상에 건너가신 아버지는 절대로 그런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이 선친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도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유언을 잘 따르는 일일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간절히 바라셨던 마음을 헤아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겠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우리 신앙의 원천이자 스승이신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그분께서 남기신 유언을 잘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악에 굳건히 맞서고 악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란 절대 진리로 완전무장해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남아있는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님 Ave Verum Corpus KV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