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자신 있게 삽시다.

ohjulia 2007. 5. 27. 07:24
2007년 5월 27일 성령 강림 대축일 다해

제1독서 사도행전 2,,1-11

1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6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7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9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10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11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제2독서 코린토 1서 12,3ㄴ-7.12-13

형제 여러분, 3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복음 요한 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즘 자살로 죽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람의 1.5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인데요. 그분들에게 죽는 방법에 대해서 적은 글을 하나 읽어 드립니다.

가장 먼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말아 보세요. 배고파 죽습니다.

죽지 않았다면 앞선 하루 동안 못 먹었던 음식을 쌓아 놓고 다 먹어보세요. 배 터져 죽습니다.

이것도 안되면 하루 동안아무 일도 하지 말아보세요. 심심해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으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일에 맞서서 두 배로 일해 보세요. 힘들어 죽습니다.

혹시나 안 죽으면 500원만 투자해서 즉석복권을 사세요. 그리곤 긁지 말고 바라만 보세요. 궁금해 죽습니다.

잠시 후 죽을랑 말랑 할 때 긁어 보세요. 반드시 꽝일 것입니다. 그러면 열 받아 죽습니다.

이 글을 듣는 분 중에는 짜증나 죽을 것 같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쓰고 있는 저도 짜증납니다. 그래도 죽고 싶다면 홀딱 벗고 거리로 뛰쳐나가 보세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일수록 좋습니다. 얼어 죽기 보다는 얼굴 팔려 죽습니다.

이상의 방법으로도 죽을 수 없다면 아직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힘내서 열심히 살아갑시다.

맞습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절망의 순간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요한이라는 소년이 아시시의 프란치스꼬 성인전을 읽고 감동하여 본당 신부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신부님, 저는 아무리 해도 성 프란치스꼬의 성덕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만일 제가 죽어 하느님 나라에 갔을 때 하느님께서 저에게 너는 왜 프란치스꼬가 못 되었느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근심 어린 얼굴로 신부님께 여쭙는 소년의 말에 본당 신부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절대로 하느님께서 너에게 그렇게 물어 보시지 않을거다. 다만 이렇게 물으실거다. ‘너는 왜 마태오가 못 되었느냐?고.”

바로 주님께서는 다름 아닌 ‘나’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창조하셨고, 자신감을 갖고 힘차게 살 수 있도록 각종 선물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계십니다. 특히 가장 큰 선물인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힘차게 이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후 제자들은 모두 두려워서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지요. 바로 그 순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오시어 평화를 빌어 주십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셨고, 부활 후 50일 후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서 자신 있게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성령으로 인하여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성령을 내려졌습니다. 바로 세례성사를 통해서 성령의 인호를 받은 것이지요. 하지만 이 세상의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들이 성령의 활동을 가로막고 있어서 주님의 뜻과는 반대로 생활할 때가 많았던 것입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을 기념하는 오늘, 나는 과연 성령의 활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제자들처럼 세상 밖으로 나가 자신감 있게 주님을 증거하면서 살고 있는지, 혹시 성령의 활동을 가로막으면서 힘없이 마지못해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자신 있게 삽시다.



무엇을 하는가?('좋은 글' 중에서)

하반신 마비가 되기 전에 내가 할수 있었던 일은 1만가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9천 가지가 있다.

나는 내가 잃어버린 1천가지를 후회하며 살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도 내게 가능한 9천 가지를 하면서 살수도 있다.

선택은 내게 달려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인생에서 두 개의 큰 바윗돌을 만났다고 말하곤 한다. 그걸 핑계로 모든 걸 포기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당신은 그 위에 올라가 더 멀리 바라보면서 "이것도 별거 아니군" 하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을 잊지 마라.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당신이 그것을 갖고 무엇을 하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