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사랑, 여유, 용서, 아량, 부드러움을 안고 살아갑시다.

ohjulia 2007. 6. 3. 05:00
2007년 6월 3일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

제1독서 잠언 8,21-31

하느님의 지혜가 이렇게 말하였다.
22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23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24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5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6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27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28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29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30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31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제2독서 로마서 5,1-5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음 요한 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크게 일으킨 찰스 키터링이 83회 생일 때, 그의 아들이 ‘아버지, 이제는 연구를 중단하고 좀 쉬시지요.’라고 말하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늘만 생각하는 사람은 흉하게 늙는단다. 사람을 흉하게 늙도록 만드는 다섯 가지 독약이 있지. 그것은 ‘불평, 의심, 정말, 경쟁, 공포’란다. 이 다섯 가지 독약의 양이 많을수록 노년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진단다. 반대로 사람을 우아하게 늙도록 만드는 다섯 가지 묘약도 있지.”

“그게 뭡니까? 아버지.”

아들이 묻자 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랑, 여유, 용서, 아량, 부드러움’이다.”

정말로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자주 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찰스 키터링이 말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단어를 내 안에서 품고 살아갈 때 우리들의 외적인 모습도 우아하게 그리고 멋지고 아름답게 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이가 이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런 긍정적인 단어보다는 부정적인 단어를 내 안에 품고서 힘들게 사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이유가 ‘나’만을 강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나만 잘 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 다른 사람은 전혀 상관없다는 생각들, 나만 더 많은 것을 갖고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는 것을 목표로 생각하기에, 스스로를 더욱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 되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으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 되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성부, 성자, 성령께서 당신의 모범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삼위일체의 신비’인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베푸십니다. 예수님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푸시지요. 이제 성령을 통해서 인류 역사 안에 그 사랑을 계속해서 베푸십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전해 주시기 위해서 성격이 전혀 다른 세 위격이 하나가 되는 신비가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인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사랑과 신뢰로서 하나를 이루셨듯이, 우리 역시 서로 사랑과 신뢰로서 하나를 이루길 바라십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모습이 삼위일체의 삶을 우리 공동체 안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 자신이 얼마나 삼위일체의 삶을 살고 있는지 반성했으면 합니다. 혹시 ‘나’만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후회할 행동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아니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모습을 본받아 나의 이웃과 하나 되어 이 세상에 사랑을 심으면서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을 심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쁘게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 여유, 용서, 아량, 부드러움을 안고 살아갑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좋은 글'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여섯 단어는 ‘내가 정말 잘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합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단어는 ‘당신은 정말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네 단어는 ‘당신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단어는 ‘당신에게 이것을 부탁드립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단어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우리’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한 단어는 ‘나’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