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열왕기 하권 24,18-22
그 무렵 18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제2독서 로마서 5,1-5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음 마태오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요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기말시험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시험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저의 학창시절이 하나 떠올려졌습니다.
보통 시험을 보고나면 곧바로 시험답안을 친구들과 맞춰봅니다. 그래서 내 점수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보지요. 그런데 이렇게 점수를 맞추다보면 서로 언성이 높아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적은 1번이 맞는 답니다. 아니다 4번이 정답이다.’라면서 언성을 높여서 말을 합니다.
저 역시 이러한 경우가 있었지요. 저는 1번이 확실한 정답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4번이 정답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근거를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지를 들었습니다. 그 문제지에 똑같은 문제가 나왔거든요. 그리고 뒷면에 적혀 있는 해답은 분명 1번이었습니다. 저는 의기양양했지요. 다 틀리고 저만 맞았으니까요. 그런데 친구들은 교과서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의 내용을 근거로 답을 생각해보니 4번이 정답이네요. 그러나 저는 저의 주장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장을 꺾으면, 저만 한 문제 틀리는 것이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을 찾아가서 문제지의 답이 이래서 이렇게 답을 썼다고, 따라서 이 답도 맞게 해주면 안 되냐고 여쭈었지요.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저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문제지는 교과서를 보충할 뿐이지, 교과서가 문제를 보충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지에 똑같은 문제가 나왔고 그 문제지에서 제시하는 해답이 1번이라 할지라도, 교과서의 내용으로 4번이 맞다면 4번이 정답인 것입니다.
당연히 주 텍스트를 따라야 함이 올바른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마치 제가 선생님께 문제지를 내세워서 억지 주장을 했던 것처럼 억지 주장을 펼칠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세속적인 부와 명예와 권력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법칙을 쫓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지요? 그러나 이 세상의 법칙이 정답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들이 주 텍스트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법칙입니다.
사실 세상의 법칙을 따르면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답이 아니기에 순간의 만족만 있을 뿐,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박해에 대한 경고를 하시면서 이러한 말씀으로 희망을 주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바로 주님께서 제시하는 정답만을 쫓아가셨던 분이지요. 바로 진리의 길,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참 행복의 길만을 따라 가시면서 우리들이 어떤 길을 가야할 지를 제시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그러한 박해가 없다는 것이지요. 지금도 박해가 있다면, 열심히 주님을 증거 할 텐데……. 하지만 현대에도 똑같은 박해가 계속됩니다. 내가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많은 유혹들, 그래서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게끔 하는 유혹에 넘어갈 때, 우리들은 또 한 번의 배교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요? 배교의 길인가요? 아니면 순교의 길인가요? 바로 순교의 길이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정답의 길입니다.
참 진리를 따라 걷는 우리가 됩시다.
나를 생각하게 하는 글(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 중에서)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도 합니다. 나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잘난 체도 합니다.
나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닫기도 합니다. 나는 정직하자고 다짐하면서 꾀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떠난다고 하면서 돌아와 있고 다시 떠날 생각을 합니다. 나는 참아야 한다고 하면서 화를 내고 시원해 합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다가 우스운 일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는 외로울수록 바쁜 척합니다.
나는 같이 가자고 하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라 하면 같이 가고 싶어집니다.
나는 봄에는 봄이 좋다 하고 가을에는 가을이 좋다 합니다. 나는 남에게는 쉬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계속 일만 합니다.
나는 희망을 품으면서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나는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 소속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지만 안정도 좋아합니다.
나는 절약하자고 하지만 낭비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약속을 하고나서 지키고 싶지 않아 핑계를 찾기도 합니다.
나는 남의 성공에 박수를 치지만 속으로는 질투도 합니다. 나는 실패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실패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나는 너그러운 척하지만 까다롭습니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지만 불평도 털어놓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있습니다. 그 내일을 품고 오늘은 이렇게 청개구리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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