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나의 나쁜 습관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습관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세요.

ohjulia 2007. 7. 5. 05:24
2007년 7월 5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기 22,1,19

그 무렵 1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곳을 볼 수 있었다. 5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6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7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8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9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11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14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16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9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함께 브에르 세바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서 살았다.


복음 마태오 9,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얼마 전, 실내화 하나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실내화는 보통 우리가 쉽게 보는 일반적인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글쎄 실내화 바닥에 극세사 천(몹시 가는 실로 만든 천)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걸어 다니기만 해도 실내화 바닥의 천으로 인해 저절로 청소가 됩니다. 그리고 그 천이 더러워지면 신발에서 떼어 물빨래를 하면 그만입니다. 얼마나 편합니까? 방 청소를 위해 신을 질질 끌면서 방을 왔다갔다만 하면 되니까요. 또한 더러운 것이 떨어지면 실내화 신은 발로 쓱쓱 닦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 식사로 빵을 먹다가 보니, 빵 부스러기와 약간의 이물질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발로 닦았습니다. 그 실내화가 생긴 뒤에는 습관적으로 이렇게 발로 닦게 되었지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이 날 제 발에는 실내화가 신겨 있지 않았거든요. 즉, 양말만 신은 발로 바닥을 닦았던 것입니다.

습관이란 이렇게 무섭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들, 그런데 우리가 습관적으로 짓는 죄들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단순히 나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만 말해야 할까요? 그래서 습관이 되었으니 그러려니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지요. 나에게 나쁜 습관이 있다면 과감하게 없애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습관 되어 실내화도 없이 이물질을 닦아서 양말이 더러워진 것처럼, 내 영혼은 더욱 더 더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중풍병자에게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에 율법학자들은 ‘이 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부정하지요. 어쩌면 이들은 습관적으로 주님을 거부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더 큰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신이 생명처럼 생각하는 율법에 조금이라도 어긋난 행동이라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된다면 무조건 거부하고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말씀하시고,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시지요. 이처럼 불가능이 없으신 분께 자신의 무조건 거부하는 습관 때문에 주님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율법학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습관처럼 짓는 죄가 바로 주님을 습관적으로 거부하는 또 하나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래서 불쌍한 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주님을 거부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나쁜 습관이 내 몸에 배어 있다면 과감하게 없앨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나쁜 습관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습관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세요.



빈의자('좋은 글'중에서)



한 자매가 본당 신부님께 자기 집에 와서 아버지의 임종 준비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신부님이 도착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머리를 베게 두 개로 받쳐놓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침대 옆에는 빈 의자가 있었다. 신부님은 노인에게 그의 딸이 자기가 온다는 것을 이야기해준 것으로 알고 '오래 기다리셨지요?'하고 말을 건넸다.

'아니요. 당신은 누구요?' 하고 노인이 말했다.

신부님은 자기소개를 하고 노인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저는 빈 의자를 보고 할아버지가 제가 올 것을 알고 계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하자, '신부님, 저 의자... 문을 좀 닫아 주시겠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저는 이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내 평생 동안 나는 기도하는 법을 몰랐어요. 성당에서 배웠지만 항상 잊어버리곤 했답니다. 저는 기도를 포기했어요. 약 4년 전 어느 날 저의 친한 친구가 저에게 말했지요.'

'이보게. 기도는 예수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간단한 일이야. 자, 내가 가르쳐주지. 자네 앞에 빈 의자를 하나 갖다놓고 그 의자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을 그려보게. 그분이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셨기에 이건 상상이 아니네. 그리고 자네가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식으로 그분께 말을 하게.'

그래서 나는 그 방법을 시도했고, 오래지 않아 그것을 매우 좋아하게 되어 매일 몇 시간씩 그분과 말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조심합니다. 만약 제 딸이 제가 빈 의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 애는 저를 정신병원에 보냈을 겁니다.

신부님은 이야기에 감동되어 노인에게 계속하시라고 격려하셨다. 그리고 노인에게 임종에 필요한 성사를 주고 본당으로 돌아왔다.

이틀 후 딸이 전화를 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평화롭게 돌아가셨는지요?'

'예. 2시쯤 아버지가 저를 부르시더니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제 손을 꼭 잡아 주셨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몸을 구부려 머리를 편안하게 의자위에 놓으셨어요. 신부님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부님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우리 모두가 그분처럼 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