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은 83년 11월 결혼하여 생긴 가정이다. 이듬해에 딸 하나를 낳고 당시 사회적 분위기나 우리 집안 형편상 단산했다.
몇 해 지나서 아내가 입양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했다. 남들 하는 거 보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한다는 것은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남의 식구를 내 식구로 받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그간에 많은 세월이 지나 큰 아이는 처녀가 됐고 내 나이도 50을 넘었다. 나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1급 사회복지사이지만 입양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가까운 동료들이 입양을 한다고 얘기할 때도 그저 나와 상관없는 먼발치의 얘기로 들었다.
그러다가 지난 해 9월 15일 CBS TV에서 '사랑으로 쓰는 입양 일기'란 프로가 방영이 되는 걸 아내가 봤단다. 거기엔 시설에서 크고 있는 갓난 아이 둘과 초등학교 1년생 둘을 데리고 시설의 원장과 교사가 출연하여 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줄 가정을 찾는다는 토크 프로였다.
아내가 하는 말이 TV에 나온 얘기가 '여자 어린이는 그래도 입양이 잘 되는데 남자 아이는 입양을 꺼린다.'면서 그러면 우리가 거기 나온 남자 어린이 두 명을 다 입양하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한다.
입양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내가 그 말을 들으니 일단 그 프로를 다시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 '다시보기'로 시청을 했다. 그리고 한 아이 정도는 입양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가족 간의 합의가 우선이라 생각하여 딸아이한테 물었다. 의외로 환영하는 말을 한다.
그리하여 2006년 10월 12일, 아내와 경상도에 소재한 그 시설을 찾아 갔다. 생각보다 시설은 크고 훌륭했다. 그 중에서 고른다는 것은 마음이 허락지 않았고 TV에서 본 아이가 우리 아이라 생각하고 그 아이만을 봤다.
또래보다 왜소하고 마른 체격에 가냘프고 매우 숫기 없어 보였다. 과연 저 아이가 우리 가정에 와서 적응을 할 것이며, 우리가 제대로 키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실에서 입양을 하는 쪽으로 인터뷰를 끝내고 1월 16일, 아이를 데리고 왔다.
삼사일 지내는 걸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집 생활을 한다. 외국으로 출장 갔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온 새벽, 귀국하여 잠시 이불 속에 누워있는데 이 아이가 잠이 깨더니 옆에 누워있는 나를 보고 약간 놀라는 소리와 함께 가볍게 나를 끌어안는다.
내가 잠들어 있는 걸로 안 것이다. 반갑다는 표현인 모양이었다. 나는 잠든 척 아무 반응을 안했다. 가족의 체온을 느끼는 것 같아 바로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이라 생각했다.
처음과는 달리 아이는 활달하고 영리하고 민첩하다. 여기 살던 아이나 다름이 없이 활기차게 지낸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나는 저것이 한 쪽 구석에서 눈치나 보고 말도 잘 안하고 그러면 어쩌나 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시설 측에서도 감사한 일이라고 좋아한다. 아이가 얼마나 잘 적응하고 발발대고 다니는지 다람쥐 같다고 하여 애칭으로 다람쥐라고 부른다.
이 아이가 바르게 잘 커서 당당하게 입양아로서 성공한 사례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그 사실을 본인이 스스로 간증할 수 있는 축복된 미래를 믿음으로 내다본다.
16일은 우리 다람쥐가 우리 집에서 맞는 첫 번째 생일이다.
부디 바르게 잘 커서 자기와 같은 환경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황 화 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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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은 가슴으로 아이를 낳는 일입니다. 출산의 고통만큼 아프고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입양아가 편견 없이 자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 입양은 한 생명을 이어가는 귀한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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