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타인을 이해한 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도록 하십시오.

ohjulia 2007. 11. 19. 14:46
2007년 11월 19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제1독서 마카베오 상권 1,10-15.41-43.54-57.62-64

그 무렵 10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안티오코스 임금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이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
11 그 무렵에 이스라엘에서 변절자들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자, 가서 우리 주변의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그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
12 이 말이 마음에 들어, 13 백성 가운데 몇 사람이 임금에게 기꺼이 나아가자, 그는 그들에게 이민족들의 규정을 따라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14 그리하여 그들은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15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이렇게 그들은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였다.
41 임금은 온 왕국에 칙령을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42 자기 민족만의 고유한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 이민족들은 모두 임금의 말을 받아들였다. 43 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금의 종교를 좋아하여,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
54 백사십오년 키슬레우 달 열닷샛날, 안티오코스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 이어서 사람들이 주변의 유다 성읍들에 제단을 세우고, 55 집 대문이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56 율법서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태워 버렸다. 57 계약의 책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따르는 이는 누구든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였다.
62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63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64 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린 것이다.



복음 루카 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두 사람의 짧은 대화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도움을 요청한 저 여인을 우리 집에 묵게 해주려고요.”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뭐죠?”

“그들 모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내 이웃은 과연 어떤 존재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내 이웃은 이용해먹고 지배하기 위해서 내 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애정 가득한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기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그러다보니 ‘나’ 외의 것에서는 의미를 전혀 찾지를 못합니다. 즉, 자기를 넘어서는 의미를 찾지 못하면서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 뿐입니다.

위의 대화에서 모자를 자기 집에 묵게 하려는 여인은 ‘자신을 넘어서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지요. 여 여자는 도움을 요청하는 낯선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고 도움을 베풀고 싶어 합니다. 이 여자는 자신이 낯선 모자에게 받을 어떤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 모자의 존재 자체에만 관심이 있어 하지요.

그렇다면 누가 행복할까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지은 스티븐 코비 박사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연구한 뒤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먼저 타인을 이해한 후에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자신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 이야기하는 성공도 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리코 근처에서 구걸하던 소경이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면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르짖음이 엄청나게 컸나 봅니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른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앞서가던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며 떠들지 말라고 했다고 하지요. 이 사람들은 왜 이 소경을 꾸짖었을까요? 단순히 시끄럽다고? 예수님 피곤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을 못 만나도록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방해할 때가 많습니다. 성당 대문 앞에 서서 성당에 못 들어오도록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모습을 보고서 과연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었는지 반성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끔 하려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처럼 남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머물러서 ‘나’만 잘 못되고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결국 남이 잘 되는 길이 아니라, 바로 내가 잘되는 길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자기를 넘어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오늘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타인을 이해한 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도록 하십시오.



가수 인순이의 인생철학(‘좋은 생각’ 중에서)

1978년 20세에 희자매로 데뷔한 가수 인순이는 내년에 데뷔 30주년을 앞두고 있는 중견 가수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어느 신세대 가수 못지않다. 도대체 젊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젊어지려고 애쓰지 않아. 현재 나는 진짜 청춘이거든! 내 스스로가 찬란하게 느껴지니까.”라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그의 이런 당당함 뒤에는 어머니의 큰 사랑이 있었다. 혼혈인이라고 남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도 어머니는 “우리 딸이에요.”하며 자랑스럽게 그를 소개하곤 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혼혈인 딸을 키우기 위해 어머니는 가족과 연락을 끊어야 했고 그 때문에 인순이는 어머니 장례식 날이 돼서야 외가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방송에서도 그녀의 곱슬머리를 문제 삼았다. 데뷔 초창기 머플러를 두르거나 모자를 쓴 모습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멋진 노래 실력은 이런 삐딱한 시선들을 한 번에 제압했다. 사람들은 그를 혼혈인으로 기억하기보다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로 인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뛰어난 가창력, 힘 있는 부대, 시원시원한 말솜씨, 게다가 조PD, 미쓰라진 같은 젊은 가수들과 함께 작업하는 열정까지. 그는 늘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국악인 신영희 선생에게서 창을 사사하고 재즈를 배우기 위해 미국 유학을 다녀온 것도 자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처럼 스스로를 새롭고 찬란하게 여길 수 있는 비결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는 건 바람을 맞는 것과 같아요. 바람은 늘 나를 향해 불어오지만 곧 내 뒤로 사라지거든요. 사연도, 세월도, 아픔도 다 그렇게 사라져요. 새로운 바람을 맞아야 하는데 지나간 바람을 붙잡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슬픔과 아픔을 잡은 채 힘들어하지 말고 버릴 것은 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