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좋은 일을 하는데 최선을 다해 보세요.

ohjulia 2008. 1. 23. 09:08
2008년 1월 23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무엘 상권 17,32-33.37.40-51

그 무렵 32 다윗은 사울에게, “아무도 저자 때문에 상심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너는 저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마주 나가 싸우지 못한단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전사였지만, 너는 아직도 소년이 아니냐?”
37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저를 빼내 주신 주님께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의 손에서도 저를 빼내 주실 것입니다.” 그제야 사울은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러면 가거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빈다.”
40 그러고 나서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개울가에서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메고 있던 양치기 가방 주머니에 넣은 다음, 손에 무릿매 끈을 들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다가갔다. 41 필리스티아 사람도 방패병을 앞세우고 나서서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42 그런데 필리스티아 사람은 다윗을 보더니, 그가 볼이 불그레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를 업신여겼다. 43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 오다니,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시 다윗에게 말하였다. “이리 와라. 내가 너의 몸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45 그러자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이렇게 맞대꾸하였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46 오늘 주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나야말로 너를 쳐서 머리를 떨어뜨리고,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계시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하겠다. 47 또한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을 향하여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도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향하여 전열 쪽으로 날쌔게 달려갔다. 49 그러면서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 하나를 꺼낸 다음, 무릿매질을 하여 필리스티아 사람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50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누르고 그를 죽였다. 다윗은 손에 칼도 들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다. 51 다윗은 달려가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밟고 선 채, 그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를 죽이고 목을 베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저희 용사가 죽은 것을 보고 달아났다.



복음 마르코 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작년 시내의 어떤 미용실에서 이발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은 피곤했었는지 이발을 하면서 계속 눈이 감기는 것이었어요. 졸면 안 된다고 스스로 되뇌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그런데 미용사가 처음에는 머리를 살짝 살짝 치면서 저를 깨우더니만, 나중에는 화를 내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발하는데 이렇게 잠자는 사람 처음 봤다고 하면서……. 하지만 어떻게요? 졸린 걸……. 아무튼 그 미용실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공개적으로 무안을 당하다보니 다시는 그곳에 가기 싫더군요.

어제 이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또 계속 졸기 시작했답니다. 의자에 앉자마자……. 사실 이발하는데 졸면 안 되지요. 미용사가 제대로 깎을 수 없는 것은 물론, 결국 저만 손해일 것입니다. 하지만 졸음을 뿌리치기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졸고 있는 저를 향해서 미용사는 화를 낼만도 한데, 제가 졸고 있는 방향을 이용해서 이발을 해주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 할 때쯤 제가 깨었는데, 미용사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손님, 피곤하신가 봐요.”

화를 낼 수도 상황인데도 오히려 저를 염려해 주는듯한 말을 해주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동안 나의 말과 생각만 옳다면서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말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음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바리사이들의 위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든 제거하는데 혈안이 되고 있지요. 그래서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는 모든 의료 행위가 금지되어 있으니까요. 일주일이라는 7일 중에서 치유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날이 6일이나 있습니다. 더군다나 평생 동안 손이 오그라들어있던 사람이 하루 더 오그라들어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요.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그를 치유해주십니다. 바로 완고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치유 기적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본다면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지요.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이 분명히 맞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제거할 모의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우리도 역시 이런 모습을 취할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어떻게든 나의 옳음만을 주장한다면 그리고 그로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전한다면, 우리는 이천년 전의 바리사이들처럼 또다시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모의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데 최선을 다해 보세요.



말이 낳는 오해(‘좋은 생각’ 중에서)

어떤 사람이 생일을 맞아 절친한 친구 네 명을 초대했다. 세 친구는 제 시간에 도착했는데 나머지 한 친구는 한참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그러자 주인이 운을 뗐다.

“왜 와야 할 사람이 이렇게 안 오는 거지?”

이 말을 들은 한 친구가 갑자기 안색이 바뀌며 화를 냈다.

“와야 할 사람이 아직 안 왔다니? 그럼 우리는 오지 말아야 할 사람들인가?”

그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돌아서서 가 버렸다. 한 친구는 안 오고, 또 한 친구는 화가 나서 가 버리자 주인이 더욱 초조해하며 말했다.

“어휴, 가지 말아야 할 사람이 그만 가 버렸군.”

이번엔 남아 있던 두 친구 중 하나가 화를 냈다.

“친구,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그럼 가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라는 얘기가 아닌가? 정 그렇다면 나도 가주겠네.”

그 친구 역시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기만 하던 남은 친구가 우정 어린 마음에서 주인에게 충고를 했다.

“친구, 말을 조심해서 했어야지.”

주인은 “내 말을 모두 오해한 것 같네. 그 친구들에게 한 말이 아니었는데…….”라고 했다. 그러자 마지막 남은 친구마저 안색이 달라졌다.

“뭐야! 그렇다면 나를 두고 한 말이란 건가? 정말 기가 막히는군.”

결국 나머지 한 친구마저 화를 내며 집을 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