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포기하지 마세요.

ohjulia 2008. 7. 2. 07:29
2008년 7월 2일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아모스 5,14-15.21-24

14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그래야 살리라. 그래야 너희 말대로 주 만군의 하느님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정을 세워라. 어쩌면 주 만군의 하느님이 요셉의 남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도 모른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21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배척한다. 너희의 그 거룩한 집회를 반길 수 없다. 22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친다 하여도 받지 않고, 살진 짐승들을 바치는 너희의 그 친교 제물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
23 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희의 수금 소리도 나는 듣지 못하겠다. 24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복음 마태오 8,28-34

28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29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30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31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33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로 가서는, 이 모든 일과 마귀 들렸던 이들의 일을 알렸다. 34 그러자 온 고을 주민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며칠 전, 제 방에 동창신부 몇 명이 놀러왔습니다. 그리고 제게 묻네요. 맥주 없냐고……. 그런데 맥주가 있기는 했지만 냉장고가 아닌 밖에 놓여있는 맥주밖에 없었지요. 즉, 시원한 맥주가 아닌 뜨뜻한 맥주만 있는 것입니다. 사실 맥주는 시원한 맛으로 마시지 않습니까? 여름날에 마시는 찬 맥주는 갈증과 무더위를 잊게 해주지요. 하지만 워낙 술을 잘 마시지 않다보니 냉장고에 넣어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전혀 시원하지 않은 이 맥주를 마시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한 동창이 부엌으로 가서 냉동실 안에 있는 얼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뜨뜻한 맥주 안에 얼음 몇 개를 넣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얼음의 주성분이 물이니까, 맥주에 물 탄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따라서 맥주가 싱거워질 텐데 그 싱거운 맥주를 어떻게 마시냐고 말이지요. 그러나 그 맥주는 전혀 싱겁지 않았습니다. 냉장고에 오랫동안 넣은 시원한 맥주와 똑같은 맛을 내었습니다.

이상했지요. 그런데 아침에 다시 얼음조각을 만들기 위해 물을 채우는 과정에서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얼음조각을 만들기 위해 많은 물이 필요할 것 같지만, 사실 24개의 얼음조각을 만드는데 물 컵 한 잔이면 충분하더라는 것입니다.

적은 양의 물이 얼음이 된 것이지요. 워낙 적은 물이기에 맥주의 맛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해봅니다.

적은 물이 얼음으로 변화되어 시원한 맥주를 제공해주듯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우리 역시 변화되어서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큰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스스로 할 수 없다고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약한 마음입니다. 분명히 작고 보잘 것 없는 우리이지만,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그런데 왜 포기하십니까? 주님의 능력을 부정하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포기하고 주저앉고 마는 이유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길 원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마귀 들린 사람이 말하지요.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마귀는 주님께서 가까이 오는 것을 원하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이 부정하다는 무덤이나 돼지 떼 안에서나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이렇게 주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하면서, 주님의 명령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이유로 주저앉아 버리는 마음이 바로 가까이 오시는 주님을 거부하는 것과 똑같지 않을까요?

이제 주님을 맞이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못할 것이 없다는 마음을 갖고 힘차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 주님 안에서 기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나의 사랑하는 가족(‘좋은생각’ 중에서)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과 언제라도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얼마나 큰 즐거움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내가 우리 가족 중 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면 곧 답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언제라도 선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과 언제라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나의 아픔을 낱낱히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