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순간적인 만족이 주어지는 행복이 아닌, 영원한 행복의 길을 선택하세요.

ohjulia 2008. 8. 2. 12:49
2008년 8월 2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제1독서 예레미야 26,11-16.24

그 무렵 11 사제들과 예언자들이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귀로 들으신 것처럼 이 사람은 이 도성을 거슬러 예언하였으니,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12 이에 예레미야가 모든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이 집과 도성에 대하여 여러분이 들으신 이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13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실 것입니다.
14 이내 몸이야 여러분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기에 좋을 대로 바르게 나를 처리하십시오.
15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과 이 도성과 그 주민들은 죄 없는 이의 피를 흘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16 그러자 대신들과 온 백성이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사형당할 만한 죄목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였습니다.”
24 예레미야는 사판의 아들 아히캄의 도움으로, 백성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지는 않게 되었다.



복음 마태 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 지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시도 마음이 편치 못해서 늘 고민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가난하기 짝이 없는 머슴 하나가 항상 콧노래를 흥얼거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이 머슴은 매일 기쁘고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지주는 머슴의 이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고통이 ‘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머슴의 집에 몰래 금화 보따리를 던져 놓았을 때 머슴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 뒤 머슴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주의 추측은 정확히 맞았습니다. 그날 이후 머슴은 더 이상 콧노래를 부르지도 않았고 기뻐해 보이지도 또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금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냉가슴을 앓느라 행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또 이러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골동품, 그림, 보석 등을 수집하는 데 열을 올리는 사업가가 있었지요. 그는 자신이 수집한 것이 도난될 것을 염려해서 철통같은 보안 시스템을 설치한 뒤 평소에는 소장품들을 감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자랑을 하면서 즐거워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수집품들을 자신의 빌딩 청소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입니다. 지하 금고에 들어간 청소부는 부러운 기색 하나 없이 여유롭게 감상했지요. 금고실의 철문을 나온 청소부에게 사업가가 물었습니다. “어떤가? 이렇게 많은 예술품과 보석을 본 적이 없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처럼 부유하고, 당신보다 더 행복해졌습니다.”

부자는 청소부의 대답이 너무 엉뚱해서 그 이유를 물었지요.

“나는 당신이 가진 보물을 보았으니 똑같이 부유한 것 아닙니까? 게다가 나는 저런 물건들을 잃어버릴까 밤잠을 설칠 필요도 없으니 당신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하겠지요.”

이 두 이야기를 통해서 과연 어떤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금은보화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일까요? 세속적인 부와 명예는 우리를 절대로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한 헤로데 임금은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요? 그는 돈도 많았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말 한 마디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것만을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세속적인 체면 때문에 세례자 요한을 죽이기까지 하지요. 그러나 그는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적인 만족만을 가져올 뿐 죄책감으로 인해 평생 힘들게 살 수밖에 없었지요.

행복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은 너무나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더 큰 행복을 가지려는 욕심인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지금 주어져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현재의 생활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주님께서 항상 사랑으로써 나와 함께한다는 강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이 세상 안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순간적인 만족이 주어지는 행복이 아닌, 영원한 행복의 길을 선택하세요.



진정한 성공(‘행복한 동행’ 중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남자가 있었다. 그는 돈과 명예만이 성공의 목표라 생각하며 대기업 중역 자리에까지 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중년을 맞은 어느 날, 바람을 쐬러 강가에 나갔다. 낚시를 하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는데, 청년은 미동도 않는 낚시찌를 바라보며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쁘게 일분일초를 살아온 중년의 눈에는 젊음을 낭비하는 한심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남자가 청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니, 이 좋은 날에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요?”

“보다시피 낚시를 하고 있죠.”

“젊은 나이에 더 멋진 일을 해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나는 낚시를 좋아해요. 낚시를 하며 여러 가지 행복한 생각들을 하니까요. 낚은 물고기를 팔아 생활비에 보탤 수도 있고 저녁을 지을 수도 있죠.”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할 생각은 없소? 취직해 돈을 번다든지.”

“제가 왜 그런 일을 동경해야 하죠?”

“열심히만 한다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으니까.”

“높은 자리가 무슨 소용인데요?”

“그땐 당신이 원하는 일은 뭐든 할 수 있소! 원하는 건 뭐든지!”

그러자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이거라면요? 하루 종일 이렇게 앉아 낚시를 즐기는 거요.”

사람은 각기 다른 꿈을 갖고 있다. 행복의 기준과 성공의 의미도 저마다 다르다.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가고 있다 생각되는 이 길이 혹 빙 돌아가는 길은 아닌지 점검해 볼 일이다. 인생의 성공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