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말을 잘 합시다.

ohjulia 2008. 9. 2. 05:38

2008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코린토 1서 2,10ㄴ-16

형제 여러분, 10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1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복음 루카 4,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동물나라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거북이 한마리가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백조 두 마리가 찾아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경치 좋은 호수에 사는 거북이 당신이 너무나 부러워요.”

그러나 거북이는 오히려 하늘을 멋지게 나는 백조가 부끄럽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백조의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에 백조는 한 가지 약속만 지켜준다면 자신의 집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거북이는 “어떤 약속인데요? 저는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겠습니다.”라고 장담을 했지요. 백조는 말합니다.

“저희 집에 가는 동안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키실 수 있습니까?”

이 정도쯤이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북이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이제 백조 두 마리가 나뭇가지를 가져와 거북이에게 가운데를 물게 하고, 백조들은 양쪽 끝을 문 채 하늘 높이 날았습니다.

거북이는 신이 났습니다. 땅에서만 살다가 이렇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지요. 그런데 이렇게 나무 끝을 물고 공중을 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던 땅위의 온갖 짐승들이 백조에게 거북이가 잡혀 간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거북이는 이 소리를 듣고는 백조와의 약속을 잊고 높이 떠있는 상태에서 “그게 아니야.”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순간 물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치고 말았고, 결국 거북이는 땅에 떨어져 죽게 되었답니다.

말이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또 반대로 죽이기도 합니다. 힘과 용기를 심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과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선을 부르는 말을 쓰기도 하고, 반대로 악을 부르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써야 할 말은 과연 어떤 말일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깜짝 놀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와 힘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더러운 마귀도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권위와 힘이 있었기에 사람을 살리고,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심어주는 은총의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따르기로 다짐한 우리 역시 이러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과 정반대의 모습을 취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나를 드러내는 욕심 가득한 말과 남을 판단하는 말로써 권위와 힘이 전혀 보이지 않는 쓸데없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단번에 되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예수님처럼 권위와 힘이 가득한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망과 고통을 주는 말이 아닌 힘과 용기를 주는 말을, 악을 부르는 말이 아닌 선을 부르는 말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모습에 한걸음 다가서는 우리들이 될 것입니다.



말을 잘 합시다.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말(작자 미상)

많은 말 중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말은 격려의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격려의 말을
예술이라고 표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당장 화가나 작가가 될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좋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격려의 예술가는 될 수가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멋진 칭찬을 들으면 그것만 먹어도
두 달은 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을 못 먹어서 배고픈 것이 아니라
격려와 칭찬과 긍적적인 말에 목말라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피하고 긍적적인 말을 합시다.

불평과 원망의 말
상처 주는 말은 멈추고
좋은 말, 칭찬의 말, 격려의 말
긍정적인 말을 하도록 합시다.

격려는 기적을 낳습니다.
격려는 그러나 하고 일어서게 합니다.

격려하면 받는 사람의 기쁨이 크지만
격려하는 사람에게도 기쁨이 남습니다.

격려는 꽃과 같아서
그것을 주는 사람의 손에도
향기의 일부를 남기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