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주님의 사랑..

무엇을 비는가

ohjulia 2009. 7. 30. 04:04

엊그제 우리는 고사장 정문 앞에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조하게 서 있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았다.

사실 오래 전부터 부모들은 사찰이나 교회에서 간절하게 기도해 왔다.

자식을 둔 부모가 숨이 붙어있는 날까지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자식 잘 되기」일 게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그건 세태가 아무리 바뀌어도, 대부분의 부모가 갖는 공통의 심사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부모들은 그저 매달리고, 다 준다.

얼마 전에도 기러기 아빠가 또 외롭게 죽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착잡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3생을 둔 집안은 온통 비상이고, 모든 고등학교의 운영 또한 초점을 그들에게 맞추고 있다.

우리 학교도 오랜 관례에 따라 대학수학능력 시험 40일 전부터 온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서 함께 기도한다.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배우고 익힌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잘 답할 수 있게 몸과 맘을 잘 지켜주시고 지혜와 용기를 더해주시라』고.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는 『저만을 생각하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라』고 말이다.

오늘날 신앙인들의 생활양상에 대한 비판 가운데 하나가 「기도」이다.

특히 「기복(祈福)신앙」을 문제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실 제가 믿는 절대자에게 무엇을 청(請)하는 게 기도의 한 모습이라면,

복을 주시라고 비는 건 크게 틀린 일은 아닐 성싶다.

다만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그냥 달라고만 하는 것은 문제일 듯도 하다.

예컨대 힘써 공부하지 않은 내 자식이 어느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란다면,

정원이 늘어나지 않는 한, 누군가 하나는 내 자식 대신에 밀려나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기도는 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누군가를 「떨어뜨려 주십시오」하는 꼴이 되게 마련이다.

이런 것이 바로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매달린다고 한다.

그래서 편안할 적에는 그냥 지내다가도 힘드는 일이 생기면 곧잘 기도를 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정작 무엇을 청해야 할지를 모르는 데에 있다.

이런 점에서는 사도 바울로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의 표현처럼, 그 역시 처음에는, 육신을 가시로 찌르는 병을 얻었을 때

『자기가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세 번이나 간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의 성서말씀처럼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었다.

『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질까 봐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곧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고통이 내게서 떠나게 해주시기를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하고

번번이 말씀하셨습니다』(2고린 12, 7∼9).

또 있다. 너무나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모습이다.

힘들게 가르쳤으니 너무 탓할 일만은 아니로되, 상당수의 부모들은 제 자식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돈벌이 잘하기만을 기도한다.

그래서 소위 영양가 높다는 「인기학과」에만 몰린다.

그런 풍조가 드세다보니 좋은 심성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순수학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먼 장래를 내다보자면 개인으로나 우리 사회에 얼마나 손해가 되는 지 모른다.

이것 또한 심각한 문제다.

길을 잘 건너게 해주십사 하고 기도하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도한대로 정신차려서 발걸음을 떼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기도한다는 것은 그 내용을 살도록 우리 자신을 일깨우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해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곧 「아버지의 뜻」일 게다.

이러한 우리의 삶을 보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것은 그분의 몫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제가 해야 할 일은 제쳐두고 그분의 자리까지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을 부리러 든다.

 이것이 문제다.

입시철을 앞둔 이 계절에 아이들을 바르게 안내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해야하는

내 모습이 떳떳하고 바른지를 살피며 기도한다.

제발 어른들이 아이들을 돈벌이의 도구로 생각지 않기를 기도한다.

어머니들이 제 자식을 「얼(얼굴)짱」으로 가꾸기보다는 「맘(마음)짱」으로 기르기를 기도한다.

「혀」를 수술해주려 하지말고 아이들이 타고난 재능을 살려주는 데 맘쓰기를 기도한다.

선생님들이 그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사랑하는 일을 제일 우선으로 삼기를 기도한다.

- 한상갑(바오로.전주 해성고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