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2010년 6월 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ohjulia 2010. 6. 21. 15:27

2010년 6월 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제1독서 열왕기 하권 17,5-8.13-15ㄱ.18

그 무렵 5 아시리아 임금은 온 나라를 치러 올라왔다. 그는 사마리아까지 쳐 올라와, 그곳을 세 해 동안 포위하였다. 6 마침내 호세아 제구년에 아시리아 임금은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서, 하라와 고잔 강 가 하보르와 메디아의 성읍들에 이주시켰다.
7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을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빼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 저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8 또한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풍속과 이스라엘 임금들이 만들어 낸 것에 따라 걸어갔기 때문이다.
13 주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와 선견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 경고하셨다.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보낸 모든 율법대로 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켜라.”
14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주 저희 하느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였다. 15 그들은 그분의 규정과 그분께서 저희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자기들에게 주신 경고를 업신여겼다.
18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노하시어 그들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복음 마태오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오늘부터 인천교구 전체 신부님들이 참석해야 하는 사제연수에 들어갑니다. 돌아오는 금요일까지 계속되는 연수이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은 새벽 묵상 글을 열 수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사실 전에는 노트북이 있어서 신학교에서도 묵상 글을 올렸었는데, 이제 노트북이 없어서(어떤 신부가 필요하다고 제 것을 줬거든요) 그렇게 할 수가 없네요. 또 새벽 묵상 글 올리자고 노트북을 새롭게 사는 것도 낭비인 것 같고……. 따라서 4일만 참아주시기를 청하면서, 오늘의 묵상 글을 조심스럽게 시작합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어제는 인천의 불로동 성당에서 미사를 성소후원회 육성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미사 전, 제의방에서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저는 복사를 서는 아이들에게 “커서 신부님 되고 싶은 사람?”하고 질문을 던졌지요. 네 명 중에서 한 명만이 조용히 손을 듭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친구들에게는 “신부님 되기 싫어? 신부님 되면 얼마나 좋은데?”라고 말하면서 신부님 되라고 꼬시기(?) 시작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한참을 듣던 복사 중 한 명이 큰 인심을 쓰듯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신부님, 저는 요. 이것저것 하다가 정 안 되면 그때 가서 신부님 되려고요.”

솔직히 좀 화가 났습니다. 아마 이 아이가 판단하기에 신부는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저것 하다가 정 안 되면 그때 가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이제까지 살아온 바로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길입니다. 세상의 어떤 일보다도 먼저 선택해야 할 길이고,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소중한 길이 바로 성직자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판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맞다고 확신하며 말했던 그 판단들이 과연 정말로 맞는 것일까요? 유한하고 부족한 존재인 내가 생각하고 판단했던 그 모든 것들이 과연 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한 번 더 생각한 뒤에 말하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섣부르게 판단해서 실수를 저지르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남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특히 남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은 절대로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섣부른 판단은 부메랑처럼 다시 내게 되돌아와 나에게 아픔과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렇게 부정적인 판단을 말하고자 할 때에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그 부정적인 판단을 듣게 된다면 과연 어떨지를 말입니다.

남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기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책임 있게, 그리고 가능하면 사랑을 담아 전할 줄 아는 사람이 그리운 요즘이 아닐까 싶네요.


성공이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베풀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랄프 파인즈).



견디기 훈련(‘행복한 동행’ 중에서)

결혼식을 앞둔 한 신부가 큰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옷 가게를 찾아다녀도 마음에 드는 웨딩드레스를 찾을 수 없었던 것. 신부는 자신이 입을 드레스를 직접 디자인하기로 마음먹고 기존에 유행하던 화려한 장식을 없앤 단아한 드레스를 만들어 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드레스가 완성되자 주변 사람들은 찬사를 보냈고 그 계기로 자신의 이름을 건 가게를 열게 되었다.

“당신이 디자인한 드레스가 너무 좋아요. 유명해지면 꼭 당신 옷을 입을게요.”

그녀의 숍을 자주 찾던 한 무명 배우는 이런 약속을 하기도 했다. 배우는 몇 년 뒤 ‘원초적 본능’이라는 영화로 스타가 된 샤론 스톤이었다. 약속대로 샤론 스톤은 레드 카펫에서 그녀의 드레스를 입었고, 아름다운 드레스는 금세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 드레스를 디자인한 이가 바로 베라 왕이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기까지 베라 왕에겐 남모르는 견딤의 시간이 있었다. 피겨 스케이트 선수였던 그녀는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얼마 앞두고 무릎 부상을 입었고, 결국 세계적인 스케이팅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원망하고 사는 대신, 그녀는 패션 잡지 ‘보그’에 입사해 새로운 꿈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치열한 패션계는 스케이트를 타는 것보다 더욱 힘들게 느껴졌지만 그녀는 패션 에디터로서 16년이라는 시간을 묵묵히 견뎌 냈다. 마치 훗날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훈련인 것처럼 말이다. 참고 견디는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