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2010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ohjulia 2010. 6. 29. 09:18

2010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제1독서 사도행전 12,1-11

그 무렵 1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쳤다. 2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3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4 그는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짠 네 개의 경비조에 맡겨 지키게 하였다.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그를 백성 앞으로 끌어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5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6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7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에 빛이 비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
8 천사가 베드로에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 하고 이르니, 베드로가 그렇게 하였다.
천사가 또 베드로에게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따라 나가면서도, 천사가 일으키는 그 일이 실제인 줄 모르고 환시를 보는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10 그들이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를 지나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 앞에 다다르자, 문이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어떤 거리를 따라 내려갔는데,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11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제2독서 티모테오 2서 4,6-8.17-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마태오 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에우로쿠스케)이라는 제목의 좋은 시 하나 먼저 소개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빚을 지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그 빚을 갚아가는 것
누군가에게 빚을 지면 누군가에게 갚자
누군가에게 그렇게 받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그렇게 베풀자.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
잡은 손의 온기를 잊지 않는 것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훗날 헤어지는 날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을, 내일을 살자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
아무도 혼자서는 걸어갈 수 없어.

살아있다는 것은 귀찮게도 하고 때로는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찮게만 하고 폐만 끼친다면 과연 재미가 있고 또한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지요. 기왕 살아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멋지고 신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누군가에게 받은 것을 누군가에게 갚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웃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과 말씀을 실천하는 이러한 사람만이 행복하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정답을 이야기하는 베드로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행복한 이유는 하느님께서 베드로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즉,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행복의 이유를 하느님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나의 능력이 많을 때, 내가 공부를 잘 할 때, 내가 돈을 많이 벌 때, 내가 높은 지위에 올라갈 때 등등,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에서만 찾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것으로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그리고 하느님의 뜻대로 말하고 행동했을 때에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행복의 이유를 찾고 있었을까요? 깊이 반성하고 반성할 문제입니다.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도 털끝 같은 작은 싹에서 시작되고, 구층이나 되는 높은 누대라도 한줌의 쌓아놓은 흙으로부터 시작된다.(노자)



인디언들의 결혼 축시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