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2012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ohjulia 2012. 8. 13. 12:16

2012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제1독서 에제키엘 1,2-5.24-28ㄷ

2 제삼십년 넷째 달 초닷샛날, 곧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에, 3 주님의 말씀이 칼데아인들의 땅 크바르 강 가에 있는,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에게 내리고, 주님의 손이 그곳에서 그에게 내리셨다.
4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
5 또 그 한가운데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24 그들이 나아갈 때에는 날갯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고 전능하신 분의 천둥소리 같았으며, 군중의 고함 소리, 진영의 고함 소리 같았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5 그들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6 그들의 머리 위 궁창 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 형상이 있고, 그 어좌 형상 위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
27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아래쪽은 불처럼 보였는데,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28 사방으로 뻗은 광채의 모습은, 비 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보였다.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복음 마태오 17,22-27

22 제자들이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8월 10일부터 있었던 예비신학생 피정 잘 다녀왔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 덕분에 장차 사제를 꿈꾸는 예비신학생들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성소자들을 위해서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번 예비신학생 피정 때, 면담을 하면서 제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공통적으로 던졌습니다. 

“왜 신부님이 되려고 하니?”

사실 답이 쉽지 않지요. 자신의 성소에 대해서 남에게 말한다는 것도 또한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이니까요. 그런데 예비신학생 대부분이 “세상과 다른 삶을 살려고요.”라는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안에서만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또 이 안에서 풍요로운 삶을 간직할 수 있는 것 같다는 대답도 많았습니다. 

사실 텔레비전 등의 각종 매체를 통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유혹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유혹들이 우리들에게 주는 화려함에 깜빡 속곤 하지요. 그래서 때로는 이러한 유혹들에 빠져서 더 많은 것들을 얻어야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지요. 마치 물 위 떠 있는 백조는 아주 우아하게 보이지만, 경박스러울 정도로 끊임없이 물밑에서 갈퀴질을 해야지만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즉, 겉은 화려하고 멋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 안에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세상 안에서의 인정이 아니라 하느님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느님께 인정을 받는 삶 안에서만이 참 행복, 참 풍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 사랑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만이 하느님께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금 문제가 등장하지요. 그것도 다른 세금이 아닌 성전세에 대한 문제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셔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임금이 자기 자녀들에게 세금을 거두지 않는 것을 예를 드시면서, 사실은 성전세를 낼 필요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지요. 그러나 그들과 다툼을 하시지 않기 위해 고기를 잡아 성전세를 베드로의 몫까지 내주십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세금을 걷는 이들이 무서워서?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과의 다툼으로 명확하게 진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모전이 될 수밖에 없는 성전세 논쟁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일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에 더욱 더 주목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일에 대해서는 세세한 것까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요? 

이제 하느님의 일에 주목하고 최선을 다함으로 인해 하느님께 인정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일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격려는 없다(오리슨 스웨트 마든).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예비신학생들


도우면 행복하다

미국 오리건 대학에서 한 팀은 강제로, 한 팀은 자발적으로 자선 활동에 참가하게 한 뒤 사람들의 뇌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 실험의 분석을 통해 새로운 현상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즉, 자발적으로 남을 도운 사람뿐 아니라 강제로 자선 활동에 참가한 사람의 뇌에서도 행복할 때 활성화되는 ‘보상 부위’ 세포가 바쁘게 움직이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자발적으로 하든, 강제로 하든 상관없이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것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어떤 이들은 강제로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나중에 시간이 나고 여유가 있을 때 하느님의 일을 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미루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일은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