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붙여진 예수님
전세계 수억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른다. 너도 나도 막무가내로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이란 소리를 내보지 못하고 “갓땜”(GOD DAMN)이라든지 하는 저주의 형식을 빌어서라도 한번은 부르고 넘어 갈 것이다.
그중에서도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너무나도 쉽게 불러댄다. 사사건건 정신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 형식도 다양하다.
“하느님, 아버지, 오 주여, 신이여, 제발 주님, 자비하신 주님, 사랑이신 주님, 창조자이신 주님, ….”
이밖에도 무수한 형용사를 동원해서 정말이지 주님의 귀가 인간의 귀라면 신경질이 나다 못해 노이로제나 정신병에 걸렸어도 한참은 걸렸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들 주님을 부르고 있는 것일까?
입을 것과 살 곳, 취미, 오락, 부귀, 영화, 권세와 영광 그리고 삶이냐 죽음이냐 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경매 시장에서 제각기 액수를 말하며 흥정하는 뭇 군상들의 군침도는 상품으로 전락된 이름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우리는 오늘 왜 주님을 부르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무턱대고 주님의 이름만 부른다고 그 요구 조건이 다 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갖가지 아양을 부려도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주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르 8, 34).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님의 이름을 옳게 부를 수 없다.
그리고 “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명예스러운 자아 포기에서 잘난 자기를 낮추고 못난 상대방을 높여 주는 아픔 등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광의 십자가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고, 불러도 소용없다.
십자가 없이 부르는 “주님!”은 앵무새의 노래 소리보다도 주님의 이름은 경매 시장에 걸려진 상품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 높이 매달린 위대하고 숭고한 사랑이다.
김충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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