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데살로니카 1서
2,1-8 형제 여러분, 아시다시피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가 전에 필립비에서 고생을 겪고 모욕을 당했으나 여러분에게 가서는 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담대하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동기나 속임수로 여러분을 격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인정을 받아 복음을 전할 사명을 띤 사람으로 말하는 것이며, 사람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지금까지 아첨하는 말을 쓴 적도 없고 속임수로써 탐욕을 부린 일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여러분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할 것 없이 사람에게서는 도무지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내세울 수도 있었으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을 극진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복음 마태오
23,23-26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 눈먼 인도자들아, 하루살이는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것이 바로 너희들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만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그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 차 있다. 이
눈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아라. 그래야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하하~~ 여러분들의 축하를 받을 일이 생겼답니다. 제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가 글쎄 어제 낮에 네
마리의 새끼들을 낳았네요. 즉, 제가 또 다시 개 아빠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아직 며칠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어두운 곳을 찾더군요.
그리고 그 어두운 곳에서 천을 깔고, 평평한 자리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제가 왜 그러지’했는데, 다름 아닌 새끼를 낳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솔직히 새끼를 낳은 이 어미 강아지는 제가 키우는 또 다른 수컷 강아지보다 지적 수준이 조금 떨어집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고, 그 큰 눈만을 껌뻑이면서 ‘주인이 뭔 말을 하는 거야?’하면서 쳐다보기만 할 뿐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바보 같다, 멍청이다’라는 표현을
종종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기를 낳는 것은 선수입니다. 올 2월에도 다섯 마리의 새끼들을 스스로 낳았으니까요.
사실 주인인 제가 해준 것은 새끼를 다 낳은 뒤, 미역국을 끓여서 준 것 밖에 없답니다. 나머지는 다 강아지 스스로 다 했지요.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바보 같다고 또 멍청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그 본능이라는 것이 한없이 위대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앉아!’라고 말했을 때 제자리에 탁 앉는다고, ‘손!’이라고 말했을 때 제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얹어 놓는
것만을 보고서 똑똑하다 똑똑하지 않다를 판단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면 관심을 가져보려고, 밥그릇을 입에 물고서 처량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
모습이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똑똑하고 똑똑하지 않고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네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거부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더 열심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율법의 내용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율법의 정신까지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속마음은 어떻든 상관없고, 그저 남들 보기에 옳게만 보이면 그래서 십일조를 열심히 지키고 단식과
안식일 법만 잘 따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항상 진리는 아니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만을 깨끗이 닦아 놓지만....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아라.”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리라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철저히 지키는 열심을 간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꼼꼼하게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사랑합시다.
고통에 대하여(하워드
커틀러) 2차세계대전 당시 수용소에 포로로 잡혔다가 살아난 이가 있었다.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한, 인간은 어떤 고통이든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는 수용소에서 겪었던 어려움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힘든 상황에서 살아남는가를 통찰하게
되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젊거나 기운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삶가운데서 어떤 목적과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힘을
얻었기 때문에 살아 남는 것을 보았다. 고통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면 삶의 가장 어려운 순간을 잘 헤쳐나갈 수가 있다. 고통이 종종
아무렇게나 무의미하게 일어나는 듯이 보인다. 심각하고도 비극적인 상황에서 고통뒤에 숨겨진 의미를 생각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리 고통스럽지 않을 때 한번 쯤 고통의 의미를 미리 한번쯤 생각해 보자.
혹은 큰 어려움을 겪은 후에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 작은 노력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지 아는가? 강한 뿌리를 갖고
있는 나무는 강한 폭풍도 견딜 수 있지만, 폭풍이 저 멀리서 나타나는 순간 나무에게 저절로 강한 뿌리가 생겨나지는 않는 법이듯이......
고통은 보통 불쾌감을 주지만 그 고통이 우리 인생을 더욱 강하고 깊이 있게 느끼도록 해 준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마틴루터 킹 2세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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