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티노의 성 요셉 (St. JOSEPH of Cupertino) 신부 , 신비가
축일 : 9월 18일
성인의 활동지역 : 쿠페르티노(Cupertino)
성인의 활동연도 : 1603-1663년
성인과 같은이름 : 요세푸스, 요제프, 조셉
이탈리아의 쿠페르티노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성 요셉(Josephus)은
젊어서 제화공의 도제로 들어갔다가
17세 때에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를 청하였으나 거절당하고,
그 다음에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의 평수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8개월 후에 쫓겨났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눈치가 없고 배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그는 그라텔라의 콘벤투알 수도원에서 마부 노릇을 하는 한편 3회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17년 동안이나 이 수도원에서 살았다.
이윽고 1625년에 그는 수련자로서 허락을 받았고, 너무나 지식이 부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628년에 사제로 서품되는 영광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곧 탈혼, 기적 그리고 초자연적인 은총 등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7번이나 공중에 뜨는 경험을 하였다.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조차 그의 성덕과 성실성에 탄복하여
그를 아시시(Assisi)로 보냈다.
아시시에 은거해 있는 동안에도 그의 명성은 전 유럽으로 계속 퍼져나갔기 때문에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피에테로사(Pieterossa) 수도원으로,
그 다음에는 포솜로네로 옮겨 다녔다.
1657년 그는 오시모(Osimo) 수도원으로 돌아와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귀향하여
살다가 운명하였다.
그는 1767년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공중 여행자와 비행 조종사들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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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은 누구나 다 현세에서 하느님과 일치한 생활을 한 분들인데,
주님께서 당신과의 일치를 위해부르신 길은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
어떤 성인은 사람의 주목을 끌지 않는 평범한 생활로서, 어떤 성인은 기적, 탈혼,
오상 등으로써 주님과의 일치를 도모했다.
이는 하느님의 성소에 관한 것으로 누가 좋고 누가 못하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며,
요셉은 후자에 속한 분으로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 특수한 길로써 성인이 된 분이다.
그는 1603년 6월 17일 남 이탈리아의 마을인 쿠페르티노에서 태어났다.
양친이 가난해 요셉은 어려서부터 구둣방의 직공으로 일을 하게 되었으나
곧 몸이 쇠약해졌으므로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성모님의 은혜로 다시 건강을 회복한 요셉은 감사의 뜻에서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17세 때에 꼰벤투알프란치스코회의 평수사가 되었다.
그러나 8개월 후에 쫓겨났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눈치가 없고 배운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모 친척들은 이를 매우 수치로 생각하며 요셉을 밥벌레라고까지 욕하며 냉대했다.
그러나 요셉은 잠시나마 그 수도원에서 겸손, 희생, 인내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일체를
인내하며 얼마간 요양한 후, 이번에는 규율이 조금 부드러운 그로텔라의 꼰벤투알수도원에
서 마부노릇을 하는 한편 제3회원이 되어 덕을 닦게 되었다.
평수사인 요셉은 수도원에서 가장 천한 일이라도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성의껏 잘했기 때문에 장상의 눈에 들게 되어 성직자로서의 준비를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지금부터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퍽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의 노력은 참으로 눈부신
바가 있어 서품 자격 시험에서 그는 항상 좋은 성적으로 시험에 통과되었다.
이리하여 25세인 1628년에 사제로 서품되는 영광을 입었다.
사제가 된 후 첫 미사를 지냈는데, 그는 이때에 탈혼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런 탈혼 상태는 그 후도 가끔 있었고,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서 기도할 때 혹은 십자가의
옆구리의 상처만 보아도 즉시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탈혼 상태에서는 몸이 곧 공중에 뜨면서 외부와의 감각이 전혀 중단되고 오직 하느님과
의 교감 상태, 환희를 느끼는 것인데, 그럴 때도 장상이 부르면 즉시 정상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특별한 은혜를 받음과 동시에 미래의 사정에 통하게 되고, 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런 신기한 특은을 받은 요셉에 대한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영성지도와 기도를 청하고, 때론 병의 치료와 많은 위로를
받기 위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전에 프로테스탄트였던 독일의 브라운 슈와이히의 공작 요한 프리데리코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은 1650년에 요셉이 아시시에서 지낸 미사에 참여하고 감동을 받은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항상 바른 신앙을 보존하려는 교회는 요셉의 그런 평판을 듣고 혹 민중을 유혹하는
기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고 엄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래서 요셉은 대단히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어 그로텔라에서 아시시로 보냈다.
아시시에 은거해 있는 동안에도 그의 명성을 전 유럽으로 계속 퍼져나가자,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피에트라로싸 수도원으로 그 다음에는 포쏨로네로 옮겨다녔다.
1657년에 그는 오시모 수도원으로 돌아와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다시 이동되었으나
조금도 불만한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에 대한 유혹도 깨끗이 풀어져 고위 성직자를 비롯한 교황 우르바노 8세까지
그의 겸덕을 칭찬하고 하느님의 특은을 받은 성인으로 인정하며 그의 기도와 지도를
청하겠끔 되었으므로, 이에 그의 명성은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
요셉의 나이가 60이 되자 생전의 극기와 열렬한 활동으로 무리를 해 병에 걸리게 되었고,
죽은후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묻어주기를 장상에게 부탁하고 잠자듯이 고요하게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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