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stance/♥ 마음도 살찌우고

사랑은 나를 바치는 것이다

ohjulia 2005. 9. 18. 03:24

    사랑은 나를 바치는 것이다

    고추가 빨갛게 익어간다. 여름내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햇살이 마침내 농익은 표정을 드러내고 있다. 푸른색에서 빨간색에 오기까지 햇살은 얼마나 자주 고추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을까. 그럴 때 마다 햇살은 고추가 빨갛게 익을 가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고추를 따며 나는 햇살의 노고와 사랑을 생각한다. 이제 이 가을 들녘의 고추는 햇살의 사랑을 싣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고추 대를 떠나 어느 농가의 앞마당에서 다시 한번 햇살에 자신의 몸이 바싹 마르는 시간들을 고추는 즐겁게 견디어 내리라. 잘게 갈고 갈리어 배추의 잎과 잎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들이 온전히 사라져 갈 때 햇살과 고추의 사랑은 마침내 완결 될 것이다. 모습은 사라지고 다만 맛으로만 햇살과 고추의 사랑은 남을 터이다. 실상사에서 화림원을 오르는 길에 가을 햇살이 따갑다. 아직 다 하지 못한 사랑이 있었는가. 햇살의 사랑의 말들이 먼 하늘에서부터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햇살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사랑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을 모른다고 햇살은 내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햇살은 나를 일깨우고 있다. 햇살은 능히 모든 것을 키우지만 그 어디에도 햇살의 흔적은 없다. 햇살은 모든 것을 키우며 스스로 사라져 가는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내가 없어지는 자리에 사랑은 비로소 실현 되는 것이다. 내가 남아 있을 때 사랑은 아직 먼 것이 되고야 만다. 사랑을 실현 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지울 일이다. 욕구와 성취와 안락에 대한 열망을 지워야만 한다. 그리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기꺼이 섬기고자할 때 사랑은 비로소 이룩되는 것이라고 햇살은 나를 따갑게 질책하고 있다. 자기희생이 없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 자기희생이 없는 종교인 또한 종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자기희생이 없는 인생 또한 아름다움이 없다. 우리들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기희생에 있다. 나를 버릴 때 비로소 이 세상 모든 것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길이 열리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감동을 남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모두가 자기희생에 기초하지 않은 것은 없다. 희생이 즐거움이 될 때 삶은 비로소 완성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석가의 삶도 예수의 삶도 모두 자기를 버리는 삶이었다. 버림으로서 한없이 넓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것을 그들은 온 몸으로 말하다 떠났다. 지는 햇살을 밟으며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긴다. 경운기소리가 가을이 오는 들녘을 울린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소리가 그리움처럼 남는다. 문득 그들의 삶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소박한 사람들의 일상이 내게는 동화처럼만 다가온다. 그런 삶을 뒤로 하고 나는 지금 여기 산사에 서있다. 내 손에 담긴 고추 몇 개. 나는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내 삶의 넓음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생각할 것이다. 삶의 아름다움을 위해 출가한 내 삶의 자리에서 나는 얼마나 작아져 있는지 나는 나를 돌아보리라. 아직 나는 나에 갇혀 있다. 나는 갇혀 있어 아직 사랑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햇살의 사랑 앞에서 나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배우고만 싶다. 지난 번 소개해 드린 성전 스님의 또다른 글입니다. 자기 희생이 없으면 이미 종교가 아니며 아름다운 인생이 아니라는 말씀을 새겨 봅니다. 음악은 Damita Jo의 A time to Love (사랑해야 할 시간)입니다.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중추절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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