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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문화가 흐른다...

ohjulia 2005. 10. 1. 10:13

청계천,문화가 흐른다...

 

 

 

 

 

 

 

 

 

지난 44년간 콘크리트 속에 묻혀있던 청계천이 내달 1일 2년3개월 간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마장동 신답철교까지 5.84㎞구간에는 청계천 둑을 따라 걸으며 즐길 수 있는 산책로, 청계천 역사유적지 등의 관광 코스가 만들어져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청계천의 시작지점인 광화문 청계광장 모습.

 

‘불빛 가득한 거리에 우리의 소망이 피었네,피었네. 꿈이 있어 좋다네.’

국민 가수 조용필(55)이 청계천 개통을 기념해 작곡한 ‘청계천’의 노랫가사다. 그의 노랫말처럼 오는 10월1일이면 청계천이 2년 3개월간의 복원사업을 끝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서울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예로부터 청계천은 ‘개천(開川)’으로 불렸다. 홍수로 인해 수도 중심의 피해가 빈번했던 탓에 만들어진 일종의 배수로였던 셈이다. 그러나 청개천은 일제시대를 거쳐 광화문우체국에서 마장교까지 전 구간 복개공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고가도로로 인해 오히려 소음 및 분진 등 각종 환경문제를 야기하며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도 낳게 됐다.

이런면에서 볼때 이번에 서울시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청개천은 역사속에서 하수와 우수가 흘렀던 개천과는 개념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600여년의 역사를 고이 담아 문화적 향기는 살려냈으며 인공하천이지만 자연하천의 향기를 그대로 옮겨 풍요함과 안락함이 더해진 ‘새 청계천의 시대’가 오는 것으로 봐야 옳다.

◇600년 삶의 향기, 청계천 곳곳 가득=청계천은 북쪽으로는 북악산과 인왕산, 동쪽으로는 낙산(낙타산), 남쪽으로는 남산(목면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서울의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개천이다.

태종의 천도와 함께 600여년을 서울과 함께 해온 청계천이기에 항상 시대문화의 중심에 있어 왔다. 정월 대보름에는 광교(廣橋) 등 청계천의 다리 곳곳에서 다리밟기(답교·踏橋) 놀이가 벌어졌다. 수표교(水標橋) 주변에선 장안의 아이들이 몰려나와 연을 날리고 쥐불놀이와 돌싸움을 즐겼다.

또 당시 4대문안의 내로라 하는 부자들은 기생들과 함께 노변을 거닐며 저마다 유희를 즐겼다. 일반 백성의 아낙네들에게는 빨래터로, 아이들에게는 물놀이터로 활용되기도 했다.

삶이 있는 곳에 문화가 싹트기 마련. 청계천은 예로부터 소설가, 화가, 시인 등이 예술적 영감을 얻는 주요 장소이기도 했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은 1739년 현재의 종로구 청운동 52일대를 중심으로 청계천 주변의 장관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청풍계(淸風溪)’를 그렸다.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1930년대 서울 중산층과 하층민 삶의 애환을 그린박태원(朴泰遠·1909∼1987)의 소설 ‘천변풍경’도 있다.

근대 이후 청계천은 청계7∼8가에 들어선 헌책방들로 대표된다. 많은 사람이 헌책방을 드나들며 문학과 예술, 교양, 학술의 교감을 나누곤 했다. 이렇듯 시대를 막론하고 삶과 애환이 항상 있었기에 청계천의 가장 큰 색깔은 ‘문화’의 빛깔이라 할수 있을 정도다.

◇복원공사 어떻게 이뤄졌나=이번에 복원되는 청계천 복원 구간은 중구 태평로 시점에서 동대문을 거쳐 성동구 신답철교까지 5.84㎞이다. 청계천복원사업의 출발은 지난 2003년 8월 고가도로 및 복개구조물의 철거로부터 시작된다.

복원공사의 핵심인 하천의 경우 상류쪽과 하류쪽은 둔치와 저수로를 갖춘 복단면으로 계획됐고 중류에 해당하는 삼일로∼난계로 3.4㎞는 저수부지를 주통행로로하는 복복단면을 도입해 청계천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보다 친숙하게 물과 자연을 접할수 있도록 ‘친수공간화’한 것이 특징이다.

하천복원과 함께 시민의 접근 편의를 위해 도로계획도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청계천 양안에 각각 2차로와 조업주차 공간 2m를 포함해 강가측에 5m의 보도가 조성된다. 이에 따라 청계천로의 기능은 당초 도시내 주요지역을 연결하는 기능에서 청계천 상업지역에 접근을 위한 기능으로 전환됐다.

상가측 보도와는 별개로 복원되는 청계천 조망을 위해 하천접안해 폭 2m 보도와 구간별로 하천조망공간이 설치됐다. 하천둔치의 산책로와 친수공간 및 각종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청계천 교량 및 천변보도를 통한 접근시설도 마련됐다.

차도교(보행겸용)는 현행 남북주행 모든 교차로와 장래 주변개발을 고려해 청계천에 총 22개의 다리가 들어선다. 22개다리 하나 하나가 주변여건과 청계천에 조화되도록 하기위해 상류는 역사와 과거의 이미지, 중류는 문화와 도시적 이미지,하류는 자연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담아 주변여건에 어울리도록 했다. 개별적으로도 전체적인 연속성과 통일성,일체감을 갖도록 계획됐다.

◇넉넉함과 조화로움으로 돌아온 청계천=청계천 복원공사가 막바지로 치닫으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도심에서 사라졌던 야생동물이 다시 목격되고 있다는 점이다. 청계천 주변에서 25년을 살아왔다는 소상인 김민구(54)씨는 “어릴적에 멱을 감고 피래미를 잡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최근 청계천에서 목격되는 동물은 청둥오리, 백로 등의 조류와 피라미, 메기, 잉어, 미꾸라지 등 어류 또한 셀 수 없을 정도다.

잠실대교 부근 자양취수장에서 끌어올린 9만8000t의 한강 물(2급수)과 지하철에서 나오는 지하수(1급수) 2만2000t 등 하루 12만t의 물을 흘려보내면서 주변지역의 온도가 내려가고 오염물질이 줄어드는 환경개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또 청계천 복원공사 구간의 미세먼지(PM10)와 휘발성유기화합물질(VOCs) 등 대기오염물질도 감소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청계천의 변신은 풍요로움과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있는 미래의 서울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약 4000억원이라는 투입비용에 비해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시민에게 되돌려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정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청계천 복원사업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따르면 청계천이 몰고올 경제적 효과는 주변재개발 효과 등을 고려해 건설과 금속, 일반기계, 부동산, 사업서비스 등에서 당장 계산할 수 있는 것만 최대 2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또 청계천 주변 재개발에 따라 건설부문에 10만400명, 도·소매업에 2만8000명, 금융·보험업에 9900명 등 서울 16만9000명을 포함해 모두 20만4464명의 고용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추산됐다.

실제로 시정개발연구원은 최근 조사를 통해 “공사착공 전후(2003년 4월 대비 2004년 4월)로 세운상가 재개발지역의 땅값은 간선가로변을 중심으로 평당 4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평균 50% 이상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 newsleader@fnnews.com 이지용기자

 


청계천,물길따라 걷다보니 ‘서울유람’ 일세


청계천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번에 복원된 청계천의 길이는 총 5.84㎞로 성인 걸음(시간당 4㎞)으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이것 저것 구경하다보면 4∼5시간은 족히 걸릴 정도로 다양한 볼 거리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각종 조형물과 역사유적, 경관조경 등 볼거리도 풍성해 다 돌아보더라도 지루하지는 않다.

특히 청계천 뿐만 아니라 주변에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품을 망라한 전문시장이 곳곳에 있고 끝자락에는 최근 개장한 서울숲도 자리잡고 있어 청계천이 ‘원-스톱 체험여행지’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볼거리 풍성

청계천 시점부(서울시청 뒷편)에 위치한 ‘청계광장’은 지하철5호선 광화문역이나 1?2호선 환승역인 시청역에서 가깝다. 2100여평 규모로 조성된 이 광장은 청계미니어처와 프로그램 분수, 만남과 화합을 상징하는 8도석 등이 있다. 또 야간에는 경관조명이 아름다움을 연출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조선시대 말 정조가 경기 수원 화성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반차도’ 역시 장관이다. 가로, 세로 각 30㎝짜리 도자기질의 타일 5120장을 붙여 만든 것으로 길이만도 192m에 이른다.지하철 1호선 종각역이나 2호선 을지로입구역이 가깝고 청계천 광교와 삼일교 사이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과 동대문운동장역 사이에 있는 오간수교 인근 ‘문화의 벽’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연과 환경을 주제로 한 현대 미술가 5인의 작품이 각각 가로 10m, 세로 2.5m의 크기로 전시돼 있다.

옛 청계천의 빨래터 풍경을 현대식으로 재연해 놓은 ‘청계빨래터’ 역시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빨래터는 빨래라는 주 목적외에 아낙네들의 한풀이 장소로, 아이들의 놀이터로, 마을 소식의 진원지로 각각 기능해 왔다. 지하철6호선 동묘역과 2·4호선 신당역이 가까운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 위치해 있다.

안암천과 만나는 무학교 인근에는 복원 이전의 교각을 그대로 존치해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역사물로 남겨놓기도 했다.

이와 함께 동대문구청 앞의 고산자교 인근에는 갯버들과 매자기, 꽃창포 등 수생식물을 심은 습지를 조성해 환경학습과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놓았다.

이들 조형물과 함께 청계천에는 시점부의 청계광장 분수 등 총 9곳에 분수가 조성돼 있다.

각각의 다리와 시설물들에도 경관 조명을 설치해 아름다운 청계천의 풍경을 밤에도 볼 수 있도록 꾸몄다. 이외에도 각각의 이름을 가진 22개의 다리도 청계천에 설치돼 있다.

■쇼핑 및 체험시설도 다양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시작과 때를 맞춰 오픈했던 장교동 한화빌딩 앞의 청계천 홍보관을 ‘청계천 안내센터’로 새롭게 단장해 10월1일 새로 열 예정이다. 당초의 청계천 홍보관은 ‘청계천 문화관’으로 바꿔 성동구 마장동에 다시 오픈할 계획이다.

청계천 주변에는 전문상가와 재래시장이 밀집해 다양한 볼거리와 쇼핑기회를 제공한다.

광장시장과 방산시장, 동대문시장 등 재래시장과 동대문 주변의 두산타워, 밀리오레 등은 우리나라 의류시장의 대표로 꼽히며 황학동 벼룩시장도 골동품 수집가나 일반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청계천을 따라 기계부품 전문상가, 전자제품 전문상가, 등산용품 전문점, 헌책방 등이 줄지어 있어 이들 상품을 구매하기도 한결 수월하다.

한편 서울시청 관광과(02-3707-9454)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청계천관리센터(02-2290-6849)에서는 청계천 도보관광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1코스는 청계광장∼오간수교(동대문패션타운 인근)간 2.7㎞, 2코스는 고산자교(마장동 청계천문화관)∼오간수교 사이 2.6㎞이며 걸어서 각각 3시간 가량 소요된다.

/ bada@fnnews.com 김승호기자

 

청계천,다리 이름을 알면 역사가 보인다!



서울 광화문 인근에 설치된 청계천 분수 광장.
‘다리 이름을 보면 청계천이 보인다.’

청계천은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600여년 전부터 백성들을 품고 흘렀다. 조선 시대의 청계천 다리는 모전교,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하랑교, 효경교(새경다리), 태평교(마천교·오교), 오간수교, 영도교 등 9개가 있었다. 이같이 유구한 역사로 인해 청계천에 자리잡고 있는 다리중 상당수가 저마다 삶의 애환과 역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수표교=숙종과 장희빈의 첫 만남이 이뤄진 곳이지만 복개 이후 청계천 오염의 주범이라는 불명예를 입기도했다. 조선 태종 때 다리 주변에 소·말을 거래하는 우마전을 설치하고 배설물을 개천으로 흘려보냈다. 숙종은 영희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수표교를 건너다가 우연히 문 밖으로 왕의 행차를 지켜보던 장희빈을 보고 상사병을 앓던 끝에 그를 궁으로 불러들였다.

◇광통교=광통교는 한이 서린 다리다. 신덕왕후가 낳은 형제들 때문에 왕좌에 오르지 못할 뻔했던 태종은 신덕왕후와 그 자식들이 죽은 뒤에 광통교를 흙다리에서 돌다리로 개축하면서 신덕왕후의 능을 지키던 신장석(神將石)을 뽑아다 교각으로 썼다. 뭇 사람들의 발에 밟히며 고통을 받으라는 뜻이었다.

◇영도교=영도교는 단종이 왕위를 빼앗긴 뒤 강원 영월로 귀양갈 때 아내 송비(宋妃)와 이별했던 장소다. ‘영영 건넌다리’ 등으로 불린 이유다. 청계천 다리를 소재로 한 김별아씨의 첫번째 장편소설 ‘영영 이별 영 이별’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오간수교=오간수교는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성벽에 만든 다섯 개의 아치형 구멍인 오간수문에서 유래됐다. 오간수교는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 나가는 오간수문 위에 놓여진 다리다. 죄인이 도성을 빠져 달아나든지 혹은 밤에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됐다. 명종 때에는 임꺽정의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왔다가 도망갈 때도 오간수문을 통해 달아났다.

◇장통교=중구 장교동(長橋洞) 51과 종로구 관철동(貫鐵洞) 11 사이의 청계천(淸溪川)에 있던 조선시대의 다리다. 이번 청계천에 만든 다리는 이름만 그대로 딴 다리로 세워졌다. 조선시대 5부 52방 가운데 하나인 장통방(長通坊)이 있던 자리라 하여 장통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리 근처에 긴 창고가 있었다 하여 장창교(長倉橋) 또는 장찻골다리라고도 하고, 장통교를 줄여서 장교로 부르기도 했다.

◇하랑교=중구 입정동(笠井洞)과 종로구 장사동(長沙洞) 사이의 청계천에 있던 조선시대의 다리를 이번에 복원했다. 다리 근처에 하랑위(河浪尉)의 집이 있어 하랑교라 하였고 다리 근처에 화류장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어 화류교(樺榴橋)로 부르던 것이 변하여 하리굣다리·하교(河橋)·화교(花橋)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효경교(새경다리·세운교)=다리 이름은 세운상가에서 딴 것이다. 세운교가 세워진 장소는 조선시대 효경교(孝經橋)가 있던 자리이다. 이 근처에 소경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맹교(盲橋)·소경다리라고도 하였는데, 세운상가 옆 아세아전자상가 동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newsleader@fnnews.com 이지용기자

<파이낸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