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욕하지 맙시다.

ohjulia 2005. 10. 4. 06:47
2005년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제1독서요나 3,1-10
주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내렸다. “어서 저 큰 도시 니느웨로 가 내가 일러 준 말을 그대로 전하여라.”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곧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굉장히 큰 도시로서 돌아다니는 데 사흘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요나는 니느웨에 들어가 하루 동안 돌아다니며,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고 외쳤다.
이 말에 니느웨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였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굵은 베옷을 입고 단식하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듣고 니느웨 임금도 용상에서 일어나 어의를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단식하였다. 그리고 대신들의 뜻을 모아 니느웨 시민들에게 아래와 같이 선포하였다.
“사람이나 짐승, 소 떼나 양 떼 할 것 없이 무엇이든지 맛을 보아서는 안 된다. 먹지도 마시지도 마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에게까지 굵은 베옷을 입혀라. 그리고 하느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라.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남을 못살게 굴던 나쁜 행실은 모두 버려라. 하느님께서 노여움을 푸시고 우리를 멸하시려던 뜻을 돌이키실지 아느냐?”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었다.


복음 루가 10,38-42
그때에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르셨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지난 달, 방송 녹음을 위해서 방송국에 가서 체험한 일 하나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서울의 막히는 교통 사정을 생각하면서, 저는 방송 녹음 시간보다 일찍 방송국에 들어섭니다. 그리고 방송국 로비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방송할 내용들을 살펴보곤 하지요. 그 날도 저는 방송 원고를 바라보면서 내용을 수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남자가 제 테이블 바로 옆에 앉았고, 저는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꽃미남’이라고 하나요? 선하게 생긴 얼굴, 그리고 깨끗한 피부를 갖추었더군요. 그리고 이런 사람이 바로 인터넷에서 말하는 소위 ‘얼짱’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한 남자인 저도 쳐다보게 되는 얼굴인데, 여자들은 얼마나 이 남자를 좋아할까 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너무나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 바로 그 남자가 있는 자리에서 화내는 고음의 소리와 함께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른 사람이 왔나 하면서 쳐다보는데, 그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꽃미남’ 같은 그 남자였습니다. 그렇게 호감 가는 얼굴에서, 그렇게 선해 보이는 얼굴에서 나오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저는 큰 실망을 했지요. 그리고 동시에 그 남자의 모습이 그렇게 선해 보이지도 않고, 호감이 가지도 않는 것입니다.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추악한 괴물 같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사람의 겉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호감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속마음이 깨끗하지 않다면, 호감이 가던 그 겉모습까지도 추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네요. 그리고 반대로 깨끗하고 착한 마음으로 겉모습까지 아름답게 보이는 경우도 참으로 많다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체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바로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따라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맞이하는 두 자매의 태도가 완전히 정 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마르타는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예수님의 시중을 드는 반면, 마리아는 언니와는 달리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그저 예수님 말씀만 들을 뿐이었지요. 어쩌면 이 두 모습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나, 그리고 예수님 발치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모습이나 모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마르타는 마리아에 대한 판단을 하면서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됩니다. 즉, 자신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마리아는 빈둥빈둥 놀고만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르타 편을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세요.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실상 필요한 한 가지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겉모습만을 바라보면서 남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든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즉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마르타의 모습보다는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께 나아가는 마리아의 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누구의 모습을 따라야 할까요?


욕하지 맙시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박목월)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느님은 날마다 금빛 수실로 찬란한 새벽을 수놓으시고
어둠에서 밝아오는 빛의 대문을 열어 젖혀 우리의 하루를 마련해 주시는데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을 돕고 괴로운 이가 있으면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앓는 이가 있으면 찾아가 간호해 주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밝은 하루를 하나님께 감사하고 착한 일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빛같이 신선하고 빛과 같이 밝은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다정한,
누구에게나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내가 있음으로 주위가 좀 더 환해지는,
살며시 친구 손을 꼭 쥐어주는, 세상에 어려움이 한 두 가지랴. 사는 것이 온통 어려움인데.
세상에 괴로움이 좀 많으랴. 사는 것이 온통 괴로움인데.
그럴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 서로가 돕고 산다면 보살피고 위로하고 의지하고 산다면
오늘 하루가 왜 괴로우랴.
웃는 얼굴이 웃는 얼굴과 정다운 눈이 정다운 눈과 건너보고 마주보고 바라보고 산다면,
아침마다 동트는 새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랴.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어려운 일 돕고 살자,
마음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