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아주 천천히 소리 내어 주님의 기도를 정성껏 바칩시다.

ohjulia 2005. 10. 5. 10:17
2005년 10월 5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제1독서요나 4,1-11
요나는 잔뜩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제가 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르싯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애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으시어, 악을 보고 벌하려 하시다가도 금방 뉘우치시는 분인 줄 어찌 몰랐겠습니까? 그러니 주님, 당장 이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아니,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화를 내느냐?” 하고 주님께서 타이르셨지만, 요나는 시내를 빠져 나가 동쪽으로 가서 앉았다.
거기에 초막을 치고 그 그늘에 앉아 이 도시가 장차 어찌 되는지 볼 심산이었다.
그때 주 하느님께서는 요나의 머리 위로 아주까리가 자라서 그늘을 드리워 더위를 면하게 해 주셨다. 요나는 그 아주까리 덕분에 아주 기분이 좋았다.
이튿날 새벽에 하느님께서는 그 아주까리를 벌레가 쏠아 먹어 말라 죽게 하셨다.
그리고 해가 뜨자마자 뜨거운 열풍이 불어 오게 하셨다. 더욱이 해마저 내리쬐자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었다. 요나는 죽고만 싶어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투덜거렸다.
하느님께서 요나를 타이르셨다. “아주까리가 죽었다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다니, 될 말이냐?”
요나가 대답했다. “어찌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워하느냐?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복음 루가 11,1-4
예수께서 하루는 어떤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 하나가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같이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옛날에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할아버지께서 낮잠을 주무시면서 아주 깊은 잠에 빠져 계실 때, 이 할아버지의 장난꾸러기 손자 아이가 장난삼아 할아버지의 코밑수염에다가 된장을 발라 놓았습니다. 주무시고 계셨던 할아버지께서는 강하게 나는 냄새로 인해서 잠에서 깨신 뒤에 깜짝 놀라 소리치십니다.

“방 안에서 더러운 냄새가 난다! 방 안에서 더러운 냄새가 나~~~”

할아버지는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소리치셨지요.

“세상이 썩었나봐. 세상 어디를 가도 악취가 난다! 온 세상이 썩어 버렸어.”

그러나 그 누구도 아무도 할아버지의 외침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 할아버지를 보고는 “망령이 드셨군. 정신이 나가셨어.”하면서 혀를 찼습니다. 물론 할아버지께서는 이런 세상 사람들이 도리어 미쳤다면서 화를 내셨지요.

그런데 문제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바로 그 할아버지의 코 밑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면서도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의 해결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그 할아버지의 코 밑만 깨끗하게 닦아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가 코 밑 닦는 것을 거부한다면 계속해서 그 문제는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도 이렇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에게 늘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남들에게 문제가 있다면서 남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늘 그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미사 때마다, 그리고 일상 삶 안에서 자주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바칠 때마다 약간 찔리는 부분이 한군데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먼저 내가 용서를 한 뒤에 주님의 용서를 청하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용서하는 것을 거부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내가 용서받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나를 통해서 다른 이를 용서하는 데에는 얼마나 인색했었나요?

나의 구원에 관한 문제 역시 다른 사람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구원이란 것도 나의 행동거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과 용서를 세상에 뿌리면 뿌릴수록 나의 구원이 가까워지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용서만을 청하면서 그 구원에 멀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요? 과연 주님의 용서를 받을 만한가요?


아주 천천히 소리 내어 주님의 기도를 정성껏 바칩시다.



주님의 기도에 관한 이야기(작가 미상)

예수님은 우리에게 왜 그토록 짧은 기도문을 주셨는가?
기도 중에 얼마나 쉽게 잡념에 잘 빠지는지 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를 창조하셔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하늘에 계신`이라고 기도하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 손에 맡기기 때문이다.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하느님의 영원한 능력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 나라가 임하시며`라고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 많은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아버지의 뜻...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명과 섭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이루려 하시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은 하느님 탓인가?
아니다. 그들의 먹을 것을 빼앗는 이기적인 사람들 탓이다.

`우리에게...용서하시고`라고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비로운 자만이 하느님의 자비를 얻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란 무슨 뜻인가?
하느님을 의지함으로써 우리의 나약함을 지켜달라는 뜻이다.

우리를 악에서 구하실 분은 누구인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