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요엘
4,12-19.21.2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뭇 민족은 떨쳐
일어나 여호사밧 골짜기로 오너라.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방 모든 민족을 심판하리라. 낫을 대어라. 곡식이 익었다. 와서 밟아라. 포도주 술틀이
찼다. 독이 차 넘친다. 뭇 민족의 악이 이토록 극에 달하였다.” 타작 수레 골짜기에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주님께서 거둥하실 날이 다가왔다.
해와 달은 어두워지고 별들은 그 빛을 잃었다. 주님께서 시돈에서 고함치시고, 예루살렘에서 소리치시니, 하늘도 떨고 땅도 떠는구나.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은신처, 이스라엘 백성의 산채가 되시리라. “그제야 너희는 알리라. 내가 너희 주 하느님으로서 거룩한 산 시온에
머무는 줄을. 예루살렘은 성소가 되어 다른 나라 사람이 아무나 지나가지 못하리라. 그날이 오면, 산마다 포도즙이 흐르고, 언덕마다 젖이
흥건하리라. 유다의 모든 시내에 물이 넘쳐 흐르고 주님의 성전에서 샘물이 솟아 아카시아 골짜기를 적시리라. 그러나 이집트는 쑥밭이 되고, 에돔은
허허벌판이 되리라. 억울한 유다 백성의 무고한 피를 쏟고 어찌 벌을 면할 수가 있으랴? 내가 그 피값을 보상하리니, 아무도 그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주님께서 시온에 계시거늘, 유다에는 사람이 끊기는 일이 다시 없겠고, 예루살렘에도 대대로 사람이 끊기지 아니하리라.
복음 루가 11,27-28 예수께서 군중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큰 소리로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고 외치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어떤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글쎄 짝사랑하는 사람이 산에 간다고 하면 그에게 돌을 주워다
달라고 부탁하래요. 그러면 그 사람은 산에 가서 발에 차이는 수많은 돌들을 볼 때마다 돌을 주워 달라고 부탁한 사람을 생각하기 마련이고, 그
결과 사랑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되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정말로 이렇게 돌을 주우면서 어떤 한 사람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좋은
감정을 갖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어떤 한 자매가 이 이야기를 듣고서 정말로 그럴까 라는
마음으로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 남자 직원에게 그 부탁을 했습니다. 마침 설악산을 간다고 하니까요. 그 형제님께서는 국립공원에서 어떻게 돌을
가져올 수 있겠느냐며 무척 난처해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매님께서는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해요. 더군다나 이 둘은 사귀는 사이도 아니니까요.
며칠 뒤, 이 형제님께서 그 자매에게 불쑥 무언가를 내밀었습니다. “뭐 부탁한 것이 있지 않아요?” 라면서 말이지요. 그러면서 두
개의 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더래요. 이 자매는 깜짝 놀랐지요.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예쁜 돌을 주워 온 그 형제님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순간 ‘이 사람, 산에 가서 내 생각을 했었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돌을 주워왔지.’하면서 의기양양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글쎄 책상 위에 그 돌을 얹어 놓았는데, 자꾸만 그 형제님 생각만 나더래요. 그리고 자꾸만 보고 싶고... 결국 이 자매님이
먼저 사랑 고백을 했고, 이 둘은 평생 함께 사는 사이가 되었다고 하네요.
자그마한 돌. 이 돌이 바로 이 둘을 사랑으로 맺어
주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돌이 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하나의 기적을 일구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이러한
기적을 일구는 돌 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들은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합니다. 물론 이 십자가를 짊으로써 때로는 고통과 시련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통과 시련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지요. 결국 우리들에게 참된 기쁨과 행복을 이 십자가를 통해서 체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 십자가를 지고 제발 좀
따라오라고 그토록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십자가의 겉모습만을 보고서 잘못된 생각을 합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처럼, 세속적인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그런 세속적인 모습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예수님의 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곧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오늘도 나의 십자가를 피하지 않는 그래서 참으로 행복한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욕하지 맙시다. 욕먹을 사람은
결국 나입니다.
8가지 효과적인
칭찬방법(작가미상) 1. 구체적으로 한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칭찬에 비해 구체적이고 분명한 행위나 생각,태도를 본인이
느낀대로 칭찬하는 것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다.
2. 간결하게 한다. 칭찬일지라도 말이 많아지면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진지하고 간결하게 칭찬하는 것이 더 깊은 인상을 주며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3. 남 앞이나 제삼자에게 칭찬한다.
남 앞에서 칭찬을 하거나 제삼자에게 간접적으로 칭찬을 전달하는 것은 칭찬을 받는 기쁨과 자랑하고 싶은 욕심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4. 사소한 것을 칭찬한다. 칭찬에 인색하게 되는 것은 사소한 장점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소한 장점들을 찾아 칭찬을 해주었을 때 의외의 효과가 있다.
5. 당사자 주변의 인물을 칭찬한다. 집에서는 미워하던
가족도 남이 욕하면 듣기 싫다. 자존심은 자신의 능력이나 외모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이 가치 있다고 여겨 질 때도 고양된다.
6. 우연 그리고 의외의 상황에서 칭찬한다.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사람들은 필요할 때만 사람을 찾지 않는다.
우연히 마주쳤을 때 "지난번 사보에 실린 글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어요!" 하며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전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호감을
산다.
7. 상대에 따라 칭찬 내용이나 방법을 달리한다. 상대나 상황에 따라서 칭찬의 내용이나 표현방식을 적절히 선택해야
한다.
8. 결과뿐 아니라 과정과 노력을 칭찬한다. 칭찬을 효과적으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중의 하나는 일의
결과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설령 뛰어난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해도 일을 하는 과정에서 쏟은 열정과 노력에 대해 칭찬할 때 상대는 용기를
갖고 더욱 열심히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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