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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 서울 4대문 중 유일하게 일반인 접근이 불허된 북대문 '숙정문'(사적 제10호)이 38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숙정문은 조선 태조 5년(1396년)에 동대문(흥인지문)과 서대문(돈의문), 남대문(숭례문) 등과 함께 건축된 곳으로 지난 68년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출입이 통제돼왔다. 대통령 경호를 위한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
청와대는 8일 북악산 숙정문과 그 일대 1.1km를 내년 4월부터 국민에게 개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에게 북악산을 돌려준다는 의미와 함께 과거 냉전시대 유산을 정리한다는 의의도 갖고 있다.
숙정문에는 소나무와 철조망이 공생한다
37년 동안 출입이 통제된 북대문 숙정문 주변에는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소나무 자태가 일품이다. 남쪽지방의 소나무들은 재선충 때문에 비상이지만 서울성곽안 북악산 소나무는 짙푸른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돌로 층층이 쌓여 길게 늘어선 성곽은 소나무를 돋보이게 하고, 소나무는 성곽의 운치를 더해준다.
내년 봄이면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는 숙정문이 8일 기자들에게 먼저 공개됐다. 서울 삼청동 삼청각 옆 홍련사에서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숙정문에 닿을 수 있다. 단, 군부대의 경비 탓에 총 3개의 철조망을 통과해야 한다. 10km 넘게 이어진 성곽 주변에는 소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날카로운 2중 철조망과 경계 경비를 서는 군 초소도 서울성곽과 함께 이어져 있다.
숙정문과 이어진 성곽에 오르면 아차산과 남산은 물론이고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은 숙정문에서 북악산 정상방향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있는 촛대바위다. 촛대바위에 오르면 경복궁과 세종로 일대가 일직선 시원스레 보인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이렇게 좋은 곳을 이제야 시민들에게 개방하게 됐다"며 "많이 늦었지만 아름다운 문화재와 자연풍광을 시민들이 누리고 즐길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얼굴에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내년 4월에 개방되는 구간은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로 이어지는 총 1.1km이다. 현재 문화재청은 숙정문 개방을 1일 3회, 회당 50명으로 제한할 계획이다. 청와대 경비를 비롯한 군부대 경계경비 문제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시민들에게 개방하기 전까지 총 12억원을 투자해 탐방로 주변과 주차장 등 편의 시설을 정비하고 주변 생태 환경을 조사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10년 동안 총 1330여억원을 들여 서울성곽 전체를 복원하고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유 문화재청장은 "일제가 무너뜨린 돈의문(서대문) 등의 성문과 성벽 복원을 추진해 복합문화재인 '사적 및 명승'으로 승격지정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역사도시(Historical City)'로 등록하는 것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닫혀진' 역사, 숙정문
숙정문은 태조 5년(1396) 9월 만들어졌다. 처음 붙여진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었다. 숙정은 '북방의 경계를 엄하게 하여 도성 안을 평안하고 정숙하게 한다'는 뜻이고, 숙청은 '도성 북쪽의 경계를 엄하게 하여 도성 사람들이 정숙하고 맑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한다'는 뜻으로, 큰 차이는 없다.
사실 숙정문이 '닫혀진 문'으로 존재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태조 13년 6월 풍수학생 최양선(崔揚善)이 숙정문은 지리학상 경복궁의 양팔과 다리 같으니 길을 내어 지맥을 손상시켜서는 안된다며 문을 막고 통행을 금지할 것을 청했다. 이에 숙정문과 창의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숙정문은 다른 문루와 달리 통로의 구실을 하지 않았다. 위치로 봤을 때도 다른 3개 대문과 달리 산 속에 있어 일반 사람들의 통로로 사용됐다고 보기 어렵다. 인적이 드문 탓에 조선시대 중종반정 때는 군사들이 집결한 곳으로 사용돼기도 했다.
숙정문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닫혀진 문으로 존재했다. 문이 열리는 때는 주로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행할 때였다. 숙정문은 이처럼 폐쇄된 문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인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주로 북문으로 칭했다. 중종 18년부터 숙정문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 이후엔 두 명칭이 혼용된다. 이름이 달라지기 시작한 연유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다.
다만 한자 표기를 달리 하여 중종 26년 북정문(北靖門)이라는 표현과 선조 20년의 숙정문(肅靜門)이라는 표현이 있다. 북문이 주로 기우(祈雨)를 위하여 열리면서 소음을 피하기 위해 시장을 옮기고, 북치는 것을 금지하는 등 정숙한 기운을 진작시키는 의미에서 발음이 조용한 숙정문으로 바뀐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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