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바
마리치 (Mileva Maric, 1875-1948) ->
그녀는...
세계적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첫번째 아내였다.
하지만...
유럽의 "비주류" 민족인 세르비아 계인데다
선천성 관절 이상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수학, 물리학, 음악, 미술 등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당시 여성이 입학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학인
취리히 공과대학에 입학, 그곳에서
4살 연하였던 아인슈타인을 만났다.
둘은 서로의 천재성에 반해 결혼을 하였고,
상대성 이론과 광양자 이론을 비롯한
세계사에 길이 남을 물리학 논문 3편을
공동 저작했다.
(특히 밀레바는 아인슈타인보다
수학적 재능이 뛰어나 이론 완성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밀레바를 멀리했고,
급기야 자신의 사촌인 엘사와 재혼하기 위해
밀레바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당시 밀레바에겐 2명의 아들이 있었음에도
아인슈타인은 아랑곳 않고
그들을 버린 채 미국으로 망명한다.
버림받은 밀레바는 그후
굉장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아이슈타인이 미국에서 세계적 명성을
높여가는 동안 그녀는 초라한 동네의
피아노 강사와 수학 교사 일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더구나...
둘째 아들은 극심한 정신질환을 앓았고,
자신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말년에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얼마 뒤 전도유망했던 이 천재 여성 학자는
73세의 초라한 노파가 되어 쓸쓸히 숨을 거둔다.
상대성이론은 그의 것이 아니라
엄연히 두사람의 것이었다
인류가 낳은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가 결함투성이에 ,
수학에는 열등생이라 할 만큼 부족했으며,
그 모든 빈자리를 또 하나의 천재적 여성이
메워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인슈타인의 아이디어에
수학적 형식과 논리를 제공해 준 사람,
밀레바 마리치.
아인슈타인은 그녀가 없었다면
자신의 창조물이 완성은커녕
시작도 되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아인슈타인의 모든 업적은
그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역사 속에 이름을 남겼고,
다른 한 사람은 역사의 그늘 속에 묻혀버렸다.
이제는 당대 최고의 이론가들이 인정했던
'그들'의 남은 반쪽 밀레바 마리치를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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