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쿠네군다(Saint Kunegunda) 황후 동정
성인의 활동지역 : 보헤미아(Bohemia)
성인의 활동연도 : +1282년
성인과 같은이름 : 아그네스, 아네스
성인의 활동연도 : +1033년
성인과 같은이름 : 구네군다, 구네군데스, 구네군디스, 쿠네군데스, 쿠네군디스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또는 구네군다)는 룩셈부르크의 백작인 부친
지크프리트와 모친 헤드비그로부터 아주 어릴 때부터 신심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독일 바이에른(Bayern)의 공작인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와
결혼하였다. 이때 헨리쿠스는 동방의 어느 목수가 제작한 십자가를 선물했는데,
이것이 지금도 뮌헨에 보존되어 있다.
어느 전기작가는 그들 부부는 결혼식 날에 동정서원을 발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당시의 황제인 오토 3세가 서거하자 헨리쿠스는 로만스의 왕으로 추대되었고,
그의 대관식은 마인츠(Mainz)에서 성 빌리지스(Willigis)에 의하여 성대히 거행되었다.
또 1013년에는 그들은 로마(Rome)로 가서 교황 베네딕투스 8세(Benedictus VIII)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았다. 이러한 쿠네군다였지만 그녀는 얼마 뒤에 중상자들의 희생물이
되었고, 남편마저 일시적이나마 아내를 의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확고히 항변해야 할 입장에 선 그녀는 불에 의한 시죄법(試罪法) 적용을 허용해 달라고
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 헨리쿠스는 자신의 의혹을 풀고 마음으로 일치하여 살았으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정을 베풀었고, 국내의 신앙 전파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쿠네군다는 황제에게 청을 드려서 밤베르크(Bamberg) 대성당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짓게 하였고, 교황 성하가 직접 오시어 축성하도록 주선하였다.
그러던 중에 중병을 앓게 되었는데, 그녀는 병이 나으면 카셀(Kassel) 근교 카우푼겐에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약속하고, 그 후 이 일이 거의 완공될 때 남편 헨리쿠스가
운명하였다.
1024년 남편의 기일을 맞이하여 성녀는 카우푼겐 성당을 수차례나 방문하고 미사 때
복음을 봉독한 뒤에, 그녀는 원래의 십자가 일부를 제대에 봉헌하였다.
그 후 그녀는 주교로부터 수녀복을 받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수도자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지난날의 황녀로서 모든 부귀영화를 잊고 비천한 환경과 초라한 수도원에서 기꺼이
살았으며, 하느님 앞에 흠 없는 삶을 살았다고 주위 사람들이 높이 칭송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1200년 3월 29일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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