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가시미로 (St. CASIMIR of Poland) 왕자
성인의 활동지역 : 폴란드(Poland)
성인의 활동연도 : 1458-1484년
성인과 같은이름 : 가시미루스, 까시미로, 까시미루스, 카시미로, 카시미루스,
카시미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수호 성인인 카시미로는 폴란드 왕가에서 13명의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난 왕위 계승자였으나 그의 스승인 요한 들루고시의 가르침과 덕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카시미로는 이미 십대 소년이었을 때부터 엄격하고 철저한 규칙 생활을 하여
맨바닥에서 자고, 대부분의 밤시간을 기도로 보내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자신을 바칠 것을 결심하였다.
헝가리의 귀족들은 그들의 왕과 불목하게 되자 카시미로의 아버지인 폴란드의
왕을 설득하여 그 아들을 보내어 헝가리를 점령하려 했다.
카시미로는 수세기 동안 많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정부에 순종했던 것처럼 그의
아버지에게 순종했다.
그가 지휘하기로 된 군대는 적군보다 확실히 수적으로 우세했다.
그러나 그 부대의 일부가 보수를 받지 못하자 이탈하고 말았다.
카시미로는 자기 참모들의 충고를 듣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그의 아버지는 자기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분노하여, 15세의 카시미로를
3개월 동안 감금했다.
나이 어린 카시미로는 그의 생전에 다시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는 기도와 공부에 전념했으며, 독일 황제의 딸과 결혼하라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독신을 지키기로 한 자신의 결심을 끝까지 지켰다.
그는 아버지의 부재중에 잠깐 동안 폴란드의 왕으로서 통치했다.
그는 리투아니아의 대공으로서 자기가 맡고 있는 리투아니아를 방문하던 중
25세에 페질환으로 사망하여 리투아니아의 빌나에 묻혔다.
폴란드인들과 리투아니아인들은 갖은 억압에도 불구하고 신앙에 굳건히 머물러
있었다. 그들의 젊은 수호 성인이 그들에게 희망을 안겨 준 것이었다. 평화는
전쟁으로 얻을 수 없다. 때로는 덕으로도 안락한 평화를 얻을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평화는 철의 장막까지도 꿰뚫고 들어간다.
카시미로는 성모 마리아께 대한 지극한 사랑을 지녔다.
특별히 그는 라틴어로 된 마리아의 찬미가 "Omni die dic Mariae -의역하자면
"매일매일 마리아를 노래하나이다."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그는 이 노래의 사본을 자기와 함께 묻어 줄 것을 부탁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Latin;
Omni die
Dic Mariae
Mea laudes anima:
Ejus festa,
Ejus gesta
Cole devotissima.
Rough English translation:
Daily, daily
Sing to Mary
Sing, my soul, her praises due!
All her feasts,
Her actions worship
With heart’s devotion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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