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에우프라시아 (St. Euphrasia) 동정녀
성인의 활동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성인의 활동연도 : 382-412년
성인과 같은이름 : 에우쁘라시아, 에우프라씨아, 유프라시아
콘스탄티노블 출신인 그녀가 일곱 살 때, 그녀의 홀어머니가 중부 에집트의 타베니시에
살도록 하였다. 소녀 때 그녀의 소망은 동정생활을 하는 공동체에서 지내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성취되어 그녀는 수녀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녀는 남은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세속과 인연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자신이 사는 공동체의 내부 일이 너무나 힘이 들어서 뛰쳐 나오려는 유혹에 수 없이
직면할 때마다, 그녀는 일주일 내내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등의 온갖 고행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였다.
그녀는 이런 노력으로 보여주는 인내심으로 인하여 동료들로부터 위대한 성녀로
높은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7세의 어린 나이로서 수녀가 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나, 성녀 에우프라시아는 이를
실행한 분이다.
그녀는 380년 동 로마 제국의 서울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궁정에서
일을 하던 고관인 안디고노라느 사람인데 그녀의 탄생후 1년이 되자 세상을 떠나 버렸다.
어머니는 그리스 정교회에서 성녀로 존경을 받고 있으며, 남편이 죽었을 때 그녀의
나이가 아직 젊었기 때문에 사바에서 재혼의 청탁을 여러 번 받았지만 고인을 사모하고
자식을 생각한 나머지 도리어 세상을 귀찮게 여기며 혼담을 다 물리치고 딸을 데리고
죽은 남편의 재산이 있는 이집트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녀는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성인, 은수자에게 설교를 듣기도 하고 혹은
자선사업을 하기도 했으나, 우연히 한 수도원의 동정녀들의 엄격한 생활양식에 감동되어
그 후로는 그 수도원 근처에 거처를 정하고 종종 그곳을 방문해 수녀들과 같이 기도를
바치기도 하고 그들에게 영신상의 교훈을 청하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그 수녀들의 생활이 너무나 가난한 것을 가련히 여긴 그녀는 남편을 위한
기도를 받는 대신 매년 일정한 금액을 기부하며 그들을 원조하려고 했다.
그러나 수도원장은 "우리는 모처럼 하느님을 위해 이와 같은 가난한 생활을 시작했으니
일평생 이런 부자유를 참아나가려 합니다"하고 그녀의 호의를 굳게 사양하고 다만 성당에
사용되는 성체 등의 기름과 약간의 향을 받을 것을 승낙했다.
에우프라시아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차차 자라나 어느덧 7세가 되었다. 어느 날
전과 같이 어머니와 더불어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기도하며 즐겁게 지내는 수녀들의
모습을 보고 어린아이 마음에도 무언가 느낀 바가 있었던지 시간이 되어 어머니가
데리고 가려고 해도 "언제까지든지 이곳에 있겠어요"하며 좀체로 움직이지 않았다.
원장이 "이곳은 하느님께 몸을 봉헌한 사람이 아니면 있을 수 없어요"하고 타이르며
보내려고 했지만, 에우프라시아는 곁에 있던 십자가를 들고 가슴에 안으며 "그렇다면
저도 하느님께 몸을 봉헌하렵니다"하고 했다.
원장은 그녀의 지성에 탄복을 금치 못하면서도, 또한 수도원에 들어오면 엄한 단식이나
심한 노동을 해야 하고 온전히 자유가 없는 데라는 것까지 말하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어린 에우프라시아는 "무엇이든 하라는 것을 할 터니이 이곳에 있게
해 주셔요"하고 끝끝내 간청해 마지않았다.
그녀의 열성에 놀라 어머니도 이제는 만사를 원장께 부탁하고 그녀를 수도원에 맡기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너무 어린아인지라, 처음에는 수도원의 다른 사람들도 자못
근심했지만, 정말 같이 생활해보니 어른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진지한 태도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년 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에우프라시아가 13세 되던 해에 동 로마 제국의
궁전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무엇일까?" 하며 의아심을 갖고 뜯어보니 그것은 어릴 때의 약혼자와 결혼을 이루도록
하라는 권고였다. 그러나 나날이 하느님과 정결한 친밀을 즐기고 있는 에우프라시아에게는
혼잡한 세속에 다시 돌아갈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테오도시오 황제 및 황후에게 회답을 보내어 지금 자기로서는 사랑하는 예수의
베필로서 일생을 보내려는 마음 외에 아무 희망도 없다는 것을 말하며 용서를 청하고,
아울러 자신의 전 재산을 컬어 빈민에게 희사할 것을 의뢰했으므로 황제, 황후도
대단히 감탄하여 그녀의 뜻대로 다 처리해 주었다.
그 후에 에우프라시아는 더욱 자신의 몸을 수앙하며 덕을 닦고, 남보다 더 열심히 고행,
기도, 일과를 실천했으므로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았지만 30세에 이르러서 갑자기
중병에 걸려 421년 3월 13일 천국을 향해 떠났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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