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 (3월 15일) 왕비, 창설자

ohjulia 2006. 3. 15. 09:05
고향으로 ,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 (St. Louise de Marillac) 왕비, 창설자

    성인의 활동연도 : 1591-1660년 성인과 같은이름 : 루도비까, 루이즈 성 루이즈 드 마리약은 1591년 8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유명한 정치가들을 탄생시킨 귀족 드 마리약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푸이시에 있는 수도원에 맡겨져 교육을 받으며 자란 루이즈는 1613년 본래 수도자로 살고 싶어하며 결혼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거절하지 못해 본의 아니게 청원서 심의관 앙투안 드 그라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후에도 영적독서로 영성을 성화시켜 나갔고 부르심을 받고도 부름심을 따르지 않았던 괴로움에 어두운 밤과 같은 영적인 시련을 거쳐야 했다. 1623년 성 니콜라스 성당의 성령 강림절 미사에서 루이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총의 순간을 체험했다. 그날 자신의 모든 이기적인 야심과 인간적인 계획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1624년 빈첸시오 아 바오로를 만난 루이즈는 1625년 남편 앙트안이 세상을 떠나자, 남은 생애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만 모두 바칠 것을 결심했다. 그후 루이즈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를 도와 1633년 가난한 이들의 종이라 불리우는 지금의 ’사랑의 딸회’를 창설하였다. 1660년 3월 15일 69세를 일기로 자신과 함께 사도직을 수행했던 자매들과 협력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조용히 생을 마감한 그녀는 1934년 3월 11일 성인품에 오르셨고 1960년 2월 16일에는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모든 크리스챤 사회사업가들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홈에서) 성녀 루도비카(Ludovica)는 아기 때에 어머니를 잃었으나 포와시의 수녀들의 도움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안토니우스 러 그라와 결혼하여 12년 동안 행복한 생활을 하였으나 남편과 사별하고 말았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뜻하지 않게도 성 프란치스코 드 살로부터 영적지도를 받는 계기가 생기면서부터 일대 전환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녀는 잘 알고 있던 성 빈첸시오 데 바오로를 찾았다. 그 당시에 그 성인은 ‘애덕 형제회’를 조직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그는 기꺼이 그녀의 소망을 받아들이고 ‘애덕의 딸 수녀회’를 설립하니, 그들의 수도원은 병원이요 성당은 교구 성당이며 봉쇄 구역은 길거리가 되었다. 회칙 초안도 그녀가 작성하였다.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관대한 사랑은 이 수녀회의 급속한 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녀의 임종 때 프랑스 내에는 이미 40개의 수도원이 있었고,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돕는 구호소는 수없이 많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봉사하라.…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 것이다. 그대가 섬기는 이는 곧 그리스도이시니…” 그녀는 1934년에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